[천자 칼럼] 100세의 품격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의료진을 돕기 위해 ‘정원 100바퀴 걷기’로 3200만파운드(약 480억원)의 성금을 모은 100세 영국인 얘기는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2차대전 참전용사인 톰 무어 씨가 보행기구에 의지한 채 왕복 25m의 정원을 100바퀴 도는 동안 전국에서 목표액(1000파운드)의 3만2000배가 넘는 성금이 모였다.

격려 편지도 14만 통 이상 도착했다. 그가 가수 마이클 볼과 함께 부른 음반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는 8만2000장 넘게 팔렸다. 영국 싱글 차트 최고령 1위다. 사흘 전 100회 생일을 맞은 그에게 영국 왕실과 정부, 국민들은 최고의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우리나라에서는 99세의 6·25 참전용사 주관섭 씨(제주 서귀포시)가 최근 국가유공자 수당을 모은 2000만원을 “코로나 사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써 달라”며 성금으로 내놨다. 100회 생일을 1년 앞둔 그는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면서 아끼고 저축한 돈으로 지난 3월에도 500만원을 기부했다.

이들의 정성과 격려 덕분일까. 국내 최고령 코로나 확진자인 97세 여성이 2주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고, 영국의 107세 여성도 건강을 되찾았다. 코로나 사태 속에 100세를 맞은 미국 남성은 오토바이 클럽 회원들과 지역 경찰차까지 총출동한 생일 축하를 받았다.

일본에서는 세계 최고령 남녀로 기네스북에 오른 112세 남성과 117세 여성이 온 국민의 박수 속에 장수 잔치를 벌였다. 일본의 100세 이상 고령자는 지난해 7만1200명을 넘었고, 우리나라도 2만 명을 돌파했다. 100세를 넘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여유롭고 긍정적인 생각, 품격 있는 말, 남을 위하는 마음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품격을 뜻하는 ‘품(品)’에는 입 구(口) 자가 세 개 있다. 평생 주고받는 말이 쌓여 그 사람의 인격을 이룬다. ‘격(格)’은 나무(木)가 각각(各) 똑바로 자라도록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서양의 격(dignity)도 ‘여러 사람을 위한 명예로운 가치’를 말한다.

품격을 제대로 갖춘 사람은 나이 들어서도 젊은이들과 교감하며, 평생 쌓은 경륜을 사회와 공유할 줄 안다. 이들의 덕목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난다. 고대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가 “품격과 지혜는 세상의 모든 부를 뛰어넘는다”고 말한 것 또한 이런 원리에서 나왔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