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포스트 코로나' 한국은 기회 잡을 수 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의 삶 속으로 침투한 지 석 달이 지나고 있다. 알 수 없는 극단적인 공포가 지배했던 겨울과 초봄은 이제 기억 속으로 아득해진 듯하다. 공원과 산에는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다시 북적인다. 일부 대학은 그간의 온라인 강의 일변도에서 오프라인 강의실 수업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이전 삶으로의 복귀가 언제 가능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지만, 초기의 공포에 비해 이만큼 상황이 반전된 것은 성공적인 방역체계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미증유의 공포 속에 한국 방역체계의 선전은 세계의 주목거리다. ‘국토봉쇄’ ‘지역봉쇄’ 등 극단적인 강제 조치 없이 코로나19를 어떻게 막아내고 있는지 그 비결을 궁금해한다. 남들과 비교하고 비교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한 한국인에게 이런 평가는 이중의 잣대로 다가온다. 초기 진원지인 중국, 새로운 진원지가 된 유럽, 미국과 비교하지 말고 중국 주변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의 감염자, 사망자가 안타깝게도 더 많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초기 대응 실패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초기의 혼란과 공포를 뒤로하고 상황을 반전시킨 것 또한 사실이다.

“코로나19 시험에서 한국은 첫 번째 시험에선 실패했지만 재수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누구나 재수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시험의 실패를 운으로 돌릴 수는 있지만, 재수의 실패까지 운을 탓할 순 없다. 기본은 실력이다. 한국의 실력은 어디에서 나오나. 그것은 한국이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방역 실패에서 제대로 배웠기 때문이다.

우왕좌왕, 가짜뉴스의 증폭 속에서 대혼란을 겪었던 메르스. 방역 인프라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제2의 메르스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진단은 행동으로 옮겨졌다. 공포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감염자 추적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도출됐다. 역학조사관에게 스마트폰, 신용카드, 폐쇄회로TV(CCTV) 검색 권한을 줬다. 수사기관도 영장 없이는 불가능한 막강한 권한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이 2015년 6월 25일 국회를 통과했다. 메르스 첫 환자 발생일로부터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전광석화였다. 법에 따라 질병관리본부는 30명 이상, 각 시·도에서는 2명 이상의 역학조사관을 확보해야 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유례없는 고강도 빈도의 검사로 주목받은 한국의 감염 진단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신종 감염병 진단 시약의 긴급사용승인 제도 덕분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법은 2017년 3월 발의, 2018년 2월 국회를 통과했다.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 대형병원 음압병실 의무화, 위험 환자 선별진료 제도도 도입됐는데 대부분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일이다. 코로나19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한국의 핵심 3종병기 ‘3T(test, trace, treat)’ 어느 하나도 이런 실패의 반면교사 없이는 탄생하지 않았다. 여기에 메르스를 겪은 질병관리본부 지휘부의 경험에서 나온 리더십이 가세했다.

코로나19와 싸우면서 원격진료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정상적인 진료가 어려운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된 원격진료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확인된 한국의 탄탄한 의료 기반과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디지털 혁명, 언택트(비대면) 사회 추세에서 원격진료는 그 가능성을 검토만 하던 문서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의료계의 반발을 극복해야 한다. 한국의 신종 병기 3T 중 ‘trace(추적)’의 경우가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디지털 추적이 사생활을 침해하고, 국가의 개인 통제를 불러온다고 입법 과정에서 인권단체들이 반발했다. 메르스 참사 재발 방지라는 합의는 그 반발을 뛰어넘는 타협을 가능하게 했다. 핵심은 공동체와 개인 간 조화였다. 사생활이 중요하지만, 공동체가 무너지면 사생활도 없다. 우선순위가 정해지고 우려에 대한 보완책이 강구됐다. 익명화, 일정 기간 후 폐기 등 제도적 보완이 이어졌다. 원격진료는 예정된 미래다. 코로나19는 그 미래를 더 앞당기고 있다. 마침 신임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이 의지를 밝혔으니 그 귀추가 주목된다.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고 했지만, 예정된 미래는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