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신한울 재개 요구엔 침묵
노동자 권익보다 이념 앞세우나

이수빈 산업부 기자 lsb@hankyung.com
[취재수첩] 탈원전 지지하며 두산重 근로자 돕는다는 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와 산하 노조인 두산중공업 지회는 22일 서울 서초동 교보빌딩 앞에서 상경 투쟁을 벌였다. 두산중공업이 유휴인력 휴업을 예고하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두산중공업 노조의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돕겠다고 나서면서 열린 합동집회다.

그러나 이날 집회에서 신한울 원전 3·4호기 사업을 재개해달라고 외친 두산중공업 노조와 달리 금속노조는 원전사업 재개와 관련해선 침묵을 지켰다. 김일식 금속노조 경남지부 수석부지부장은 “발전 분야는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국책사업”이라며 “기술력과 노하우를 보유한 노동자를 구조조정으로 내모는 것을 정부가 책임지고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법으론 대주주의 사재 출연으로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두산중공업 노조는 지난 13일 금속노조 측에 구조조정 저지와 신한울 3·4호기 사업 재개를 정부에 요구해달라는 안건을 올렸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은 노동 투쟁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오는 28일 예정된 두산중공업 임단협 상견례에도 금속노조 측이 노조 대표로 교섭에 응하기로 했다. 그러나 신한울 3·4호기 사업 재개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의 탈원전·석탄 정책을 계속 지지하겠다는 의미다.

민주노총이 핵심 사업장 노조의 요청을 묵살하는 일은 이례적이라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한 노동계 전문가는 “민주노총이 핵심 단위노조의 요구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인 사례는 찾기 어렵다”며 “탈원전 정책을 두고 선을 긋는 것은 정치적 행위”라고 분석했다.

두산중공업이 경영난에 빠진 이유가 두산건설에 대한 무리한 지원 때문이라는 주장도 맞다. 반면 산업계에선 ‘기초 체력’이 약해진 두산중공업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결정적 한 방’을 맞았다는 분석도 상당하다. 두산중공업 노조가 신한울 3·4호기 사업만이라도 재개해달라고 호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달 두산중공업 주주총회장에서 만난 이성배 두산중공업 노조 지회장은 “탈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달라는 게 아니라 (사업 전환을) 준비할 시간이라도 달라는 얘기”라며 “정부가 나서서 원전사업을 취소하는 나라에서 해외 수주에 나선들 어느 나라에서 사업을 맡기겠냐”고 토로했다.

노동단체인 민주노총이 노동자 권익보다 친환경 정책을 우선시하는 것을 두고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다. 두산중공업의 한 노조원은 “젊은 직원들까지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념을 노동자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 아니냐는 반감이 노조원 사이에 번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현장 노동자의 진정한 요구가 무엇인지 자신들의 정체성을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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