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4·19혁명 60주년 기념식에서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경제충격과 관련해 “핵심은 일자리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한 말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일자리를 지키는 방법으로 “노사 합의를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지키려면 우선 고용의 원천인 기업을 살려야 할 텐데 기업 지원의 조건으로 고용 유지를 단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무작정 직원을 내보내려는 기업은 없다. 전체 직원 중 60% 이상을 무급·유급 휴직으로 쉬게 하는 항공사들이 그렇다. 코로나 사태로 항공 승객이 90% 넘게 격감한 상황에서 일시 휴직이란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회사는 곧바로 쓰러진다. 그렇게 되면 남은 직원들의 일자리도 함께 사라진다. 무너진 기업을 정리하기는 쉬워도 다시 일으켜 세우기는 매우 힘들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코로나 쇼크로 위기에 빠진 기업을 지탱하기 위해 막대한 금융·재정 지원을 쏟아붓는 이유도 여기 있다. 기업이 없으면 일자리도 존재할 수 없어서다.

더구나 문 대통령이 ‘노사 합의’를 강조한 점도 걸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벌써부터 종업원 해고를 금지시키고, 재벌 곳간을 개방하자는 등 기업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하는 요구를 하고 있다. 노사가 고통을 분담하며 일자리를 지켜도 모자랄 판에 이기적 행태로 일관하고 있는 이런 노조와 어떤 합리적 합의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기업 지원에는 노사 합의 같은 전제조건을 달 일 아니다. 조건을 따지다가 시급히 살려야 할 기업이 정부 지원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 기업이 사라지고 나면 노(勞)도 사(使)도 있을 수 없다.

기업이 살아남아 수익을 내야 일자리를 지키고, 고용도 창출한다. 이 순서를 뒤바꿔 고용을 유지해야 기업을 살려준다는 것은 마치 최저임금을 올려 기업 투자를 이끌겠다는 소득주도 성장론의 실패 논리와 다를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