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지금 경제팀으론 위기극복 어렵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23일. 정권인수위원회(국정기획자문위)를 맡은 김진표 위원장은 부처 업무보고를 앞두고 이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사회 정책을 경제 정책의 부수물로 보지 않겠다.” 경제부처가 예산권을 틀어쥐고 사회부처 위에 군림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엄포로 해석됐다. 기획재정부 예산라인은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였다. “기재부는 재정준칙에 따라 예산을 통제하는 걸 임무로 여기는 조직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 얘기는 사회부처 요구대로 예산을 다 투입하라는 메시지로 읽혔다.”(당시 예산실 관계자)

아니나 다를까. 곧 이은 조각에서 예산라인이 화려하게 부활한다. 김동연 부총리-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고형권 기재부 1차관으로 이어지는 1기 경제팀이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난다. 가계소득을 늘린다는 명분으로 지출 증가율이 경제 성장률을 두세 배나 웃도는 슈퍼예산이 2년 연속 짜여진다. 바통을 이어받은 홍남기 2기 경제팀도 예외는 아니다. 예산라인 출신이 무색하게 512조원의 초팽창예산을 내놓는다. 지출 증가율은 9.3%다. 올해 1% 성장도 어려운 마당에 나라곳간 적자를 감수하고 돈을 펑펑 쓰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정부는 나름대로 다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제실험을 위해 마음껏 재정 투입이 필요했고, 예산라인 기용은 그걸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정부로선 그 결과가 순항하는 듯 보였을 것이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이 위기는 과거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위기다. 시장에선 코로나 위기가 실물·금융 복합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있다. 자, 이제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돈을 얼마나 투입할 것인가가 전부다. 돈 뿌리기를 해도 적재적소에 투입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코로나 피해는 차별적으로 입고 있는데, 정부의 ‘돈질’은 무차별적이다.

정부는 위기관리를 한답시고 각종 회의체를 급조하긴 했다. 부총리가 매주 위기관리대책회의를 소집하고, 대통령도 나서 직접 챙기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청와대 내에 설치한 워룸과 기재부 장관 주재의 대책회의를 베낀 듯하다.

멤버부터가 과연 위기를 돌파할 능력이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홍 부총리, 은성수 금융위원장, 이호승 경제수석,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들 중 과거 위기를 제대로 극복해본 주역이 있기나 할까. 김 실장은 학자 출신이니 말할 나위가 없고 홍 부총리는 외환위기 때 예산실 사무관으로, 금융위기 때는 미국 재경관으로 비켜나 있었다. 이 수석은 금융위기 때 경제정책국 주무과장을 맡았지만, 이미 청와대에서 경제수석이란 자리는 안 보인 지 오래다. 그나마 은 위원장 정도가 외환위기 때 서기관으로 금융 구조조정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게 전부다.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위기의 끝이 어디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면 경제팀은 매일 청와대에 모여 끝장토론을 벌여야 마땅하다. 국민에게 얼마를 나눠줄까가 아니라, 위기가 실물 부실로 전이되지 않도록 방안을 짜는 게 우선이다. 그 방안은 매우 정교해야 한다. 은행 여신담당자를 불러 개별 기업과 특정 산업의 유동성을 시시각각 체크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상처 크기를 파악해 간단한 지혈로 충분한지, 아니면 메스를 들이대 외과적 수술을 해야 할지를 놓고 치열하게 붙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해법이 나올까 말까다.

지금 경제팀은 경험이 없으니 여당의 포퓰리즘에 끌려다니며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하다. 돈 쓰는 데 익숙한 예산라인은 태평성대에나 어울리는 조합이다. 지금은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다. 정부가 지금을 위기라고 판단한다면 경제팀부터 위기관리형으로 바꿔야 한다. 이념 성향의 경제 참모진도 실무형으로 교체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