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는 국민이 많으니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인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동원해 지원금을 나눠주자는 것이다. 사사건건 대립만 일삼던 여야가 총선을 앞두고 ‘돈 퍼주기’에는 한마음 한뜻임을 확인시켜줬다. 그러나 정치권이 요구하는 긴급재정명령권은 명분도, 발동요건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야가 내세우는 명분은 하나다. 취약층에 대한 ‘즉각 지원’의 필요성이다. 국회의 추가경정예산 심의를 거치면 오는 5~6월에나 지급될 수 있어 긴급명령을 발동해 지급 시기를 앞당기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논의되고 있는 코로나지원금이 과연 그렇게 분초를 다퉈야 하는 성격인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국민 70%에게 최대 100만원(4인 가구)까지 지원한다고 발표하자 야당에서는 ‘전 국민 1인당 50만원 지급’ 주장이 나왔다. 그러자 여당에서도 모든 가구에 주자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코로나 피해로 하루하루 버티기조차 힘든 자영업 지원도 아니고, 소득 감소나 실업 우려가 없는 공무원, 고임금 봉급생활자에게까지 돈을 주는 게 무엇이 그리 급하다는 말인가.

긴급재정명령의 발동 요건에도 부합하지 못한다. 헌법 제76조는 ‘내우외환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 위기에서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해 대통령이 최소한으로 처분하거나 법률 효력을 갖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회조차 열기 어려운 비상시기에 잠시 3권 분립의 예외를 정한 것이다. 지금이 그 정도로 비상시국인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헌법을 이렇게 제멋대로 해석해도 되나.

긴급재정명령은 1972년 ‘8·3 사채 동결조치’(당시엔 긴급명령)와 1993년 ‘금융실명제’ 때 발동됐다. 나름대로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당시에도 헌법상 요건 충족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전 국민에게 돈을 뿌리기 위한 발동은 어불성설이다. 긴급재정명령권은 현금 살포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