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투표권 없는 기업은 누가 챙기나?
“항공사의 위기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내 실수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니다. 항공사를 (위기에 빠지지 않게) 100% 지원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원을 약속한 지 불과 며칠 만에 미국은 항공산업 긴급구조법안을 제정하고 320억달러의 보조금과 290억달러의 지급보증은 물론, 각종 세금을 내년 1월까지 전액 면제하기로 했다. 조건은 단 하나, 현 수준의 고용과 근로자 후생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미국이 비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초기 방역에 실패해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경제위기를 가장 빠르게 극복할 수 있는 국가라고 믿고 있다. 가장 신속하고 과감하게 정부가 직접 기업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중앙은행(Fed)은 일요일 밤 긴급회의에서 이자율을 0%대로 전격 인하하고 이어 기업어음까지도 매입하는 무제한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국채와 회사채는 물론 학자금과 신용카드 대출채권까지 매입하며 천문학적인 자금을 기업에 수혈하고 있다. 상하 양원이 불과 며칠 만에 2조달러에 이르는 긴급구조 예산을 선제적으로 통과시킨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조치 아닌가.

코로나19 감염의 종식을 예측조차 못하는 공포 속에 세계 경제는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4, 5월을 넘긴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웠던 대공황보다도 더 심각한 ‘대대공황(greater depression)’이 엄습한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2주간 벌써 1000만 명이 실직했고, 한국에서도 실업수당 신청자 수 33%나 증가했다. 특히 한국 경제는 간신히 2% 성장에 턱걸이했지만, 소득주도성장 등으로 이미 L자형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된 셈이다.

실제로 자영업자에서부터 항공·운수·관광 등 서비스산업은 물론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집콕’ 문화에 편승한 극히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전 산업이 심각한 침체를 맞고 있다. 국제선 운항은 평소의 5%에 불과하다고 한다. 기업이 신용경색에 직면하면 고용을 감축해 실업대란이 촉발되고, 부채 상환에 쫓겨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된다. 나아가 달러 유동성까지 부족하면 외환위기의 악몽에 봉착할 수 있다. 이런 위기의 사슬이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코로나19에 봉쇄된 세계 경제는 브레이크도 없이 위기로 치닫고 있다.

물론 위기 돌파의 궁극적 처방은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가시화되기 전까지는 당장 신용경색에 빠진 기업을 살리는 것이 가장 긴급한 당면과제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상적인 기업이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으로 문닫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선진국과 같은 과감하고 실질적인 기업 지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앙은행이 전례없이 양적완화를 확대했지만 여전히 선진국의 기업 지원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으니 대기업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선거철에 유권자에 대한 재난지원금 논의만 무성할 뿐 투표권 없는 기업은 아무도 챙기지 않고 있다. 물론 당장 생계가 심각한 극빈계층에 소득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70% 가구에까지 100만원을 지원하는 것은 실제 효과도 의심스럽고, 필요성도 회의적이다. 단순한 일회성 지원으로 과연 소비가 얼마나 증가하겠는가? 그러나 기업이 몰락하면 소득을 창출할 기반마저 붕괴된다. 지금은 기업 규모를 불문하고 과감하고 신속하게 지원해 코로나19 위기로부터 기업을 지켜내야 한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고, 시스템 붕괴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번 기회에 경제정책도 원론에 부합하게 시장친화적인 기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유권자인 국민이 정치적 무관심으로 일관하지 말고, 제대로 된 위기대응 전략에 반드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플라톤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벌은 자신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훗날 지금보다 더 혹독한 벌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