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인 저물가 기조 속에 3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 오르는 데 그쳤다. 주목되는 것은 계절적 요인이 큰 농산물과 외부 영향을 바로 받는 에너지 품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이 0.4%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9년 12월(0.1%) 이후 20년3개월 만에 가장 낮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물가는 가급적 안정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하락은 기술혁신이나 생산성 향상의 결과라야 경제성장과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된다. 지금처럼 경기 급랭 속에 저(低)물가가 가속화하는 것은 전혀 반가운 일이 아니다. 구조적 불황에 ‘코로나 쇼크’가 겹치면서 비롯된 수요 급감이 저물가로 이어지고, 기업의 매출 감소가 일자리 축소 및 경제 전반의 기대수익률 저하로 저성장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저성장의 악순환’에 빠져 부실한 사업체가 ‘손실 땡처리’에 나서는 것과 같은 최악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디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는 이른바 ‘D의 공포’가 불거진 지도 한참 됐다. 물가상승률이 매달 0%대였던 지난해 중반부터 “경기 하강에 따른 수요 부진을 방치하면 장기불황이 불가피해진다”고 우려한 것은 한경만이 아니었다. 과감한 규제개혁과 민간의 활력 제고를 통한 소비와 투자 확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촉구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위험 신호가 뚜렷한 경제지표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흘 전 통계청의 ‘2월 산업활동동향’에서 생산·투자·소비 등 3대 지표가 동시에 쪼그라드는 ‘트리플 악화’가 확인됐다. 14개월째 감소세인 수출도 미국과 유럽 등지의 코로나 확산세를 감안할 때 당분간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수요와 공급에서, 국내와 해외에서 동시에 이상이 생긴 ‘신형 복합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란 전제하에 위기 돌파 전략을 세워야 한다. 당장은 코로나 쇼크에 우리 경제의 ‘기저 질환’이 가려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부가 그런 논리에 기울수록 경제의 정상화는 멀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