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설사 유동성 악화시킬 '부실벌점제'
주택산업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위기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로 번져나가고 있다. 모두가 기다렸던 주택가격 안정으로 나타나면 좋겠지만, 자산시장의 변동성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워 가격 급락과 시장 붕괴로 이어질까 두렵다.

2020년 주택산업은 시장의 축소 대응과 유동성 확보라는 가장 큰 숙제를 맞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분양 시기가 계속 연기되면서 금융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회사채시장의 어려움으로 기업의 자금 확보도 어려워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정부가 입법예고한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의 부실벌점제도는 기업의 유동성 확보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벌점을 받은 경우에는 선(先)분양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부실벌점이 1점 이상이면 골조공사를 3분의 1 이상 완료해야 분양할 수 있다. 3점 이상이면 3분의 2 이상, 5점 이상이면 완료 후에, 10점 이상이면 사용 검사 후에나 분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주택사업은 선분양시스템을 중심으로 발달해왔다. 주택 수요자를 미리 확보해 분양의 리스크를 감소하고 그들의 신용으로 자금을 확보하는 구조다. 대형사도 극히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기업이 건설 자금을 모두 확보하는 후분양형 금융 구조를 형성하기 어렵다. 선분양제 제한은 건설 기업이 자금을 확보하는 데 대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공급 여건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벌점을 받지 않으면 되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번 개정안은 단순 합산 방식으로 벌점을 산정한다. 1개의 현장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에서 발생한 1건의 부실과 100개의 현장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에서 발생한 1건의 부실에 같은 불이익을 부과한다. 공사 현장이 많을수록 벌점이 높아지는 구조다. 현장 수가 많은 중·대형 건설사는 부과되는 벌점이 기존 대비 평균 7.2배, 최대 30배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공동주택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벌점 부과 권한을 갖게 된다. 벌점 부과 소멸시효를 명시하지 않아 20∼30년이 경과한 노후시설물에 대해선 민원인의 신고로 벌점 부과가 가능하다.

근본적으로 벌점 제도는 건설 공사의 부실을 방지하기 위한 사전적 조치다. 부실 공사가 발생한 사후적 제재는 건설산업기본법 및 국가계약법 등을 통해 행정제재뿐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서는 안 된다. 과도한 벌점제에 따른 선분양 제한은 오히려 주택 공급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경기가 어려울 때의 공급 물량 감소가 몇 년 뒤 경기 회복기에 가격 급등으로 이어진 것을 또다시 반복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