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칼럼] 재택근무, 일터 혁신으로 이어져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이 많아졌다. 감염병 예방 효과 말고 근무 방식 개선 효과도 거둘 수 있어서 호평이다. 재택근무를 포함해 유연근무제는 근무 장소나 시간에 대해 직원들의 선택권을 넓혀 준다. 원격근무, 시차출퇴근제, 선택근무제, 재량근로제도 있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정부지원금(1인당 최대 연 520만원) 신청도 크게 늘어났다. 올 들어 지난 24일까지 1630개 사업장, 2만936명이 신청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신청 규모(1160개 사업장)를 이미 넘어섰다. 정부 지원을 시작한 건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이다. 일·가정 양립과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서였다. 문재인 정부도 주 52시간제 보완책의 일환으로 유연근무제를 강조했다. 이 같은 정부 지원에도 산업 현장 반응은 시원찮았다. 근무 형태 변경 절차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우선 취업 규칙부터 손봐야 하는데, 그러자면 근로자 대표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노사가 서면 합의서도 체결해야 한다.

코로나 계기로 유연근무제 확산

코로나19 사태가 지지부진하던 상황을 단번에 바꿔 놓았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이고 회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할 경우 피해는 가늠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재택근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받아들여진다. 코로나19가 방아쇠를 당기자 재택근무가 빠르게 확산되는 모양새인데 여기엔 그동안의 사회적 인식 변화와 기술 발전도 뒷받침됐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저녁이 있는 삶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정보통신기술(ICT)도 발전해 기업 시장에는 ‘협업 툴(tool)’이 쏟아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재택근무 플랫폼인 ‘팀즈’가 대표적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화상회의 발표자를 반투명으로 처리, 화이트보드에 나타난 필기 내용을 참여자들이 볼 수 있다. 비디오 콘퍼런스에 강한 ‘줌’, 기업용 메신저로 유명한 ‘슬랙’은 이미 국내외에서 널리 활용된다. 한국형 슬랙으로 불리는 잔디를 비롯해 라인웍스, 토스트 워크플레이스 두레이, 리모트미팅, 팀업 등 다양한 토종 플랫폼도 있다. 근태관리 서비스인 시프티는 위성항법장치(GPS) 와이파이 인증 등을 통해 직원들의 출퇴근, 초과근무 등을 실시간으로 처리한다. 협업 플랫폼은 기업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시스템을 도입하는 중소·중견기업에는 고용노동부가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하는 점도 기업들의 결정을 돕는다.

근로 방식 혁신 촉매제 돼야

유연근무제는 코로나19 이후에도 계속 확산하고 정착할 전망이다. 장시간 근로 문제를 줄일 수 있고 삶의 질 측면에서도 장점이 많아서다. 하지만 시행 과정에서 문제점도 거론된다. ‘침실에서 거실로 출근하고, 거실에서 소파로 퇴근한다’는 말처럼 일과 가사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오히려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작업장에 설치한 CCTV가 노사 간 치열한 인권 공방을 불러왔던 것처럼 직원들의 위치정보 활용을 놓고 프라이버시 논란도 있다. 일자리 감소 우려도 나온다.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 수요가 줄기 때문이다. 재택근무 여건이 안 되는 직원들은 차별이라고 불평한다. 기존의 조직 문화나 관리자들의 인식과 충돌하기도 한다. 최근 일부 시·도교육청이 재택근무자에게 요구한 보안서약서가 화제가 됐다. ‘가정 내 근무 장소에 가족 출입 금지’를 요구해서다. 재택근무가 일하는 문화를 혁신하는 촉매가 될 수 있지만 회사나 가정에서 갈등을 키울 수도 있다. 제도·기술 못지않게 사람들의 선택·행동이 중요한 이유다.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