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나는 결혼을 쉽게 했다. 요즘같이 결혼하기 힘든 시대에 이런 말을 하면 무슨 구석기시대 이야기냐 하겠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 결혼한 게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아내와 나는 미국 유학시절 만났다. 스탠퍼드대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텍사스에서 유학 중인 지금의 아내를 소개해줬다. 처음엔 전화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호감을 키웠다. 1980년대 초반이었는데 통화요금이 워낙 비싸다 보니 미리 하고 싶은 말을 메모해 뒀다가 통화할 때 일사천리로 나누곤 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기 위해선 내가 원하는 요구사항을 전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도 나는 설레는 첫 만남을 위한 꽃다발이나 데이트를 성공시킬 달콤한 말 대신, 결혼 조건을 적은 리스트를 준비했다. 수십 년 전 일이라 다 기억나진 않지만 첫째, 나는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사람이니 잘살 수는 없다. 그래도 괜찮은가? 둘째, 나는 공부를 해야 하니 평생 잘 놀아 줄 수 없다. 그래도 괜찮은가? 등등.

이렇게 열 가지를 적었다. 지금 같으면 여자들이 다 경악하며 도망갈 것 같은 조건들을 말이다. 그리고 이 중 9개 이상 동의해야 사귈 수 있는데, 3개월의 시간을 주겠으니 잘 생각해보고 답을 달라고 했다. 너무나도 용감무쌍한, 말도 안 되는 프러포즈였다. 그런데도 아내는 한 번에 거절하지 않고 생각해 보겠노라 했다. 그리고 90일째 되던 날, 나와의 결혼을 받아들였다.

부부로 산 지 한참 지나 아내에게 “당신 그때 무슨 생각으로 결혼을 받아들였어?”라고 이유를 물어봤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 남자가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이런 조건을 달았을까 싶었지.” 아내는 항목 하나하나에서 자신이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 게 아니라 공부밖에 모르는 나의 우직함과 자신감을 본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아내는 지금까지 내 곁에서 나의 결혼 조건을 존중해주며 결혼생활을 잘 이어가고 있다.

우리 인생에서 인연을 잘 맺는 것은 중요하다. 비단 부부만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 고용주와 종업원, 기업과 인재 사이에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 특히 기업과 인력 사이의 불일치로 기술 개발의 어려움을 겪거나 인력난이 심각한 산업 현장에서 그럴 것이다. 자신의 조건에 딱 맞는 기업과 인재를 찾는 데만 애쓸 게 아니라 서로의 자신감과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조금 더 깊이 서로의 진정성을 발견하고, 그것에 동의하는 사회가 된다면 결혼도, 취업도, 산업도 좀 더 수월하게 발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