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범의 별 헤는 밤] 천문대의 한적한 봄

어느덧 겨울이 지나갔다. 이맘때면 겨우내 움츠렸던 많은 사람이 천문대를 찾는다. 경북 영천 보현산 1100m 산정까지 차량으로 쉽게 올라와 1시간 정도 가벼운 산책을 즐길 수 있는데, 1㎞ 남짓한 산책길을 왕복하면서 도시의 탁한 공기를 깨끗이 씻어내고 돌아갈 수 있다. 산 아래엔 아삭거리는 별빛 머금은 미나리가 제철이어서 많은 사람이 찾아와 자연스럽게 천문대까지 올라온다.

천문대는 밤에 올라야 제맛인데, 불행하게도 여기(보현산 천문대)는 야간에 찾아오는 손님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차량 불빛이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는 데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달이 어둡고, 하늘이 맑은 밤이면 정문 앞 주차장에 종종 별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다. 관측자는 관측하면서 감시카메라로 이런 상황을 유심히 지켜본다. 천문대 전체에 10여 대의 카메라가 있어서 밤하늘 날씨부터 오가는 사람까지 바깥 상황을 항상 살핀다.

간혹 봄이 왔다고 방심하는 사이에 늦은 눈이 내려 도로를 막아버린다. 어느 해는 4월 중순까지 눈이 온 적이 있는데, 이 시기의 눈은 낮 동안에 살짝 녹았다가 밤이면 다시 얼어서 아침 출근길을 한겨울보다 더 위험하게 만든다. 살짝 언 도로는 너무 미끄러워 사륜구동의 통근차에 체인을 감아도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간다. 한겨울에는 삽으로 눈을 치우면 올라갈 수 있는데, 얼어붙은 도로는 대책이 없다. 해가 높게 올라오고 도로가 녹으면 다시 내려가 어렵지 않게 차를 가져올 수 있다. 봄날에 한 번쯤 겪는 해프닝이다.

[전영범의 별 헤는 밤] 천문대의 한적한 봄

코로나19 탓 낯설어진 일상

이런 봄의 일상적인 풍경과 달리 요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천문대를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퇴근길에 지나는 산 아래 마을도 한적하다. 비닐하우스를 꽉 채운 미나리가 판매는 되는지 걱정이다. 천문대 직원도 서로 얼굴을 마주할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쓴다. 대부분 개인 연구실 생활이라 정상적이어도 대화가 많지 않은데, 요즘은 아예 이야기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 점심식사 시간이면 뚝뚝 떨어져 각자 먹고, 식사 후 어울려서 탁구라도 즐기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는 등 여러 가지로 무척 낯설기만 하다. 천문대는 으레 조용한 곳이어서 특별히 어려운 상황은 아니지만, 예정된 관측자까지 못 오겠다고 하니 심각함을 피부로 느낀다. 천문대의 소소한 일상을 빼앗긴 것만으로도 불편한데, 사람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어려움과 상실감은 얼마나 클지 새삼 생각해 본다.

천문대에 근무하는 연구자는 늘 밤을 새우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그런 날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1년에 두 번 관측제안서를 제출하고 많아야 1주일 남짓한 관측 시간을 각각 배정받기 때문에 연간 보름 정도 관측한다. 그나마 제안서가 심사에서 떨어지면 시간 배정을 받지도 못한다.

필자는 대구에서 출퇴근하다 보니 길이 멀어 종종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내려간다. 그러다 보니 밤에 날이 맑으면 그냥 잠들지 못하고 별을 보는 일이 잦다. 작은 망원경으로 관측을 하기도 하고, 삼각대에 얹은 카메라로 밤하늘 풍경을 찍기도 한다. 유성우나 혜성 같은 천문 현상이 있으면 일부러 남아 밤을 새우기도 한다.

1.8m 망원경 속 밤하늘

요즘 새벽에는 동쪽 하늘에 수평선으로부터 토성, 목성, 화성이 차례로 뜨고 그 위로 은하수가 놓이며, 은하수를 가로지르면 전갈자리가 독침을 은하수에 살짝 숨긴 채 머리를 치켜세우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해뜨기 직전엔 수성도 나타난다. 달은 하루에 50분씩 늦게 뜨고, 행성도 위치가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그믐달에 가까운 18일부터 22일 새벽까지 이들이 다양하게 변하는 재미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18일에는 달과 화성, 목성이 가까이 붙어 있고, 19일 새벽에는 달이 토성 가까이 놓인다. 20일에는 화성과 목성이 아주 가깝게 다가간 모습을 볼 수 있고, 하루를 건너뛰어 22일에는 달이 수성 가까이에 나타난다. 물론 21일에는 달이 수성과 토성 사이에 놓일 것이다.

운 좋게도 필자의 1.8m 망원경 관측 기간이어서 관측을 마치는 새벽에 이런 장면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천문대에 머물러도 이런 장면을 보기가 의외로 어렵다. 관측에 익숙해 아예 밤을 새우는 건 쉽지만, 해뜨기 전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밤을 새우면 다음날 근무에 지장이 있는데, 1.8m 망원경 관측 기간에는 이런 제약이 없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이 봄에 연구를 위한 관측도 좋지만 행성과 달의 다양한 움직임을 즐길 기회를 기대해 본다.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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