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은행과 보험사가 금융관련 업종이 아닌 혁신 창업기업에도 15% 이상 출자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금융 및 산업의 분리 원칙(금산분리)에 따른 15% 출자제한을 완화하는 업종에 핀테크에 이어 다른 스타트업도 포함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들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다양한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지만, 은행은 한계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금융과 무관한 기술이면 직접투자를 제한받아서다. 벤처캐피털을 끼거나 15% 제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 증권·캐피털의 지주 계열사를 활용하는 우회로가 있지만, 이런 방법으론 투자 유인이 떨어진다.

금융회사의 연간 운용자산 규모에 비하면 벤처투자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거의 대부분이 융자라는 얘기다. 연간 500조원이 넘는다는 기업금융과 비교하더라도 전체 벤처투자는 3조~4조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는 제2 벤처붐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의 벤처 생태계가 선진화되려면 100조원 정도가 벤처 쪽으로 흘러들어 와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 돈이 어디서 나올 수 있겠는가. 정부가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금산분리를 완화하겠다면 15% 제한 규정을 푸는 데 그치지 말아야 한다. 출자를 넘어 스타트업 인수합병(M&A)의 폭을 넓혀주면 은행의 디지털 혁신뿐 아니라 더 많은 벤처투자 유입이 일어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기업이 주도하는 벤처캐피털(CVC)에 대한 금산분리 족쇄도 같이 푸는 것이다. 구글 등 디지털 혁신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예외없이 CVC를 통해 스타트업 투자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범용기술로 불리는 인공지능(AI)에 투자하는 ‘톱 25’ 벤처캐피털에도 CVC가 수두룩하다. 전문적인 벤처캐피털보다 성과가 뛰어나 CVC를 선호하는 스타트업이 많다는 분석이다. CVC는 글로벌 M&A시장의 큰손이기도 하다.

미국처럼 금융회사가 운용하는 자금과 기업이 보유한 현금이 대거 스타트업 투자로 향한다면 제2 벤처붐은 물론이고 혁신성장에도 불이 붙을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전례 없는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금융통화 지원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코로나 이후까지 내다본다면 풀린 돈이 생산적인 투자와 경제활력 쪽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파격적인 규제철폐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