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칼럼] '위원회 공화국'의 민낯
“전문가 지적에 귀 기울였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뒷북 대응을 탓할 때 마다 빠지지 않는 지적이다. 세간의 지적만 놓고 보면 정부는 전문가들과 담쌓고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전문가나 이해당사자 위주로 구성한 각종 위원회를 역대 최다인 574개 두고 있는 정부로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19 등 감염병 분야부터 보자.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감염병관리위원회가 있다. 29명 위원 가운데 관계부처 공무원을 제외한 민간 전문가가 17명이다. 임기 2년인 민간 위원들은 모두 관련 학회 및 협회 등에 소속된 최고 전문가다.

도마에 오른 위원회 운영

위원회를 제대로 꾸린 듯한데도 정부 대책은 겉돈다. 회의 운영 실태를 보면 짐작이 간다. 지난해 3월 29일 오전 10시. 5기 감염병관리위원회 1차 회의가 열렸다. 8개 보고·심의 안건 논의에 1시간25분이 배정됐다. 위원 한 사람당 3분도 안 돼 깊은 논의는 애초부터 무리였다. 공무원이 준비한 안건을 형식적으로 통과시키고 바로 점심 식사로 이어졌다.

정부 부처가 위원회를 두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전문성 보완, 복잡한 이해관계의 민주적 조정이다. 운영 실태는 설치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합의제 형태의 조직인 까닭에 책임 떠넘기기가 좋다. 위원만 잘 선정하면 정부 의도대로 결정을 이끌기가 어렵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름값’을 높일 수 있다. 위원 위촉에 감사하는 뜻으로 정부 의중을 잘 헤아리기 마련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 최저임금은 무려 16.4% 뛰었다. 그런데 인상률을 결정한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들이었다. 정부가 바뀌자 노동 전문가인 공익위원들의 최저임금 판단 기조가 확 바뀐 것이다. 당시 ‘시급 1만원’이라는 대선 공약은 최대 화두였다. 새 정부 방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공익위원들에게 전문 지식에 바탕을 둔 객관적 판단은 고지식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결정 근거를 설명조차 하지 않기도 한다. 지난해 정부는 2년간 30% 가까이 오른 최저임금의 후유증을 의식해 속도 조절을 언급했고, 최저임금위원회는 2.9% 인상을 결정했다. 배경을 묻는 언론의 질문이 쏟아졌으나 답해준 위원은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결정 사항을 발표했다. 국민연금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위탁운용사에 맡겨왔는데, 한진칼과 지투알은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 지분율 5% 이상인 상장기업은 313개사다. 유독 두 곳만 직접 행사하는 데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남매간 경영권 분쟁으로 대한항공에 대한 여론이 악화돼 정부가 직접 나서기로 한 것’이라는 소문만 돌 뿐이다.

정부 '코드' 맞추는 전문가

국민연금을 통한 경영개입이 ‘연금 사회주의’라는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절차 마련에 힘을 쏟았다. 지난 1월 상법 시행령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에 이어 전문가 위원회도 정비했다. 지난달 말 새로 구성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위원 위촉 과정에서 노사단체와 시민단체의 추천을 거쳤지만 최종 낙점은 정부 몫이었다. 새 위원회도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을 결정한 이유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의학, 노동, 연금 분야의 정부위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게 정부조직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위원들이 전문성 못지않게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갖추지 못하고 정부도 형식적으로 운영할 바엔 차라리 위원회를 폐지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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