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실핏줄이 막히면…
실핏줄은 온몸에 그물 모양으로 퍼져 있는 혈관이다. 새털보다 가늘다고 해서 모세혈관(毛細血管)이라고 부른다. 머리카락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이 혈관이 우리 몸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은 수거한다. 실핏줄은 워낙 가늘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수는 10억 개나 된다. 이것이 막히면 대사물질 교환이 중단돼 몸에 이상이 온다.

‘코로나 쇼크’로 내수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우리 경제의 모세혈관이 잇따라 막히고 있다. 자영업자와 일용직 근로자, 노인 등 취약계층의 타격이 가장 크다. 서울 광장시장의 식료품 가게 주인은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매출이 1만8000원에 불과하다”며 “문을 닫아두면 상권을 회복하기 어려울까봐 억지로 지키는 중”이라고 말했다.

봄 신상품 특수로 한창 붐벼야 할 창신동 봉제공장 일꾼들은 멈춰 선 재봉틀 앞에서 한숨만 쉬고 있다. 벼랑 끝에 선 영세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피해 관련 특례보증에 목을 매고 있다. 지난 보름간 신청 건수가 3만3000건, 신청 금액은 1조1100억원을 넘어섰다.

자영업자들이 일손 줄이기에 나서면서 아르바이트와 일용직 시장도 고사 위기에 몰렸다. 소규모 식당은 종업원을 3분의 1 이하로 줄이고, 소매·기념품점 등은 ‘알바생’을 모두 내보내며 버티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건설 현장의 일용직 근로자와 가사도우미, 노인·아이 돌봄 관련 수요 또한 급감했다. 지난달 초부터는 정부 노인일자리 사업마저 잠정 중단됐다.

중소기업들은 각종 원·부자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공급망이 끊겨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해외 네트워크가 약해 다른 나라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것도 쉽지 않고, 비싼 국내 재료를 쓰면 제조원가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의 실핏줄이 막히면 내수와 수출, 거대 산업까지 위축된다. 모세혈관 손상으로 눈, 콩팥, 신경, 심장 등이 영향을 받는 것과 같다.

이를 단숨에 해결할 특효약이나 ‘핀셋처방’ 같은 단방약도 없다. 전 산업이 동맥경화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심장에 연결된 핏줄에는 신경조직이 없어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심장에 쉬스는 줄은 모른다”고 했는데….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