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신종플루 재발 방지 '재탕'
불이행 책임 떠넘기기도 판박이

고은이 정치부 기자 koko@hankyung.com
[취재수첩] 3년 만에 또 재활용되는 '코로나공약'

요즘 정치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느라 바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일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과 전문병원 확충을 골자로 하는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미래통합당도 거의 같은 내용의 보건안전 공약을 지난달 내놨다. 민주당 공약을 두고 통합당이 “우리 공약을 재탕했다”고 비판했을 정도로 내용이 비슷하다.

‘코로나 공약’의 원조가 누군지를 두고 다투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감염병 사태 때마다 반복돼온 내용이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권역별 전문병원 설립과 역학조사관 충원을 약속했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비슷한 공약을 냈다.

3년 만에 또 공약이 ‘재탕’되는 까닭은 이후 입법 순위 등에서 밀리며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 이후 전문가들은 질본의 청 승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본부장 직급을 실장급에서 차관급으로 올리는 수준에서 갈무리됐다.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은 5년째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주민 반대 등에 부딪혀 사업 추진이 지연됐다. 질본 역학조사관은 2016년 43명에서 올해 77명으로 늘었지만 전국 17개 시·도 소속 조사관은 오히려 줄었다.

국회 관계자는 “감염병 문제는 발생하기 전까진 주목받지 못하기 때문에 입법 또는 예산 배정에서 순위가 밀린다”고 했다. 2017년엔 검역인력 27명 증원을 요구하는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전액 삭감됐다. 50병상 규모로 국회에 넘어간 감염병전문병원 설치 예산 역시 심의 과정에서 35병상으로 축소됐다. 현재 전국 각지에서 음압·격리병상 부족을 호소하는 배경이다.

여야는 여전히 서로를 탓하기 바쁘다.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검역인력 증원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야당에서 재정 부담을 이유로 계속 삭감했다”며 화살을 야당에 돌렸다. 김정재 통합당 원내대변인은 “권역별 전문병원 설립법안은 우리 당 윤종필 의원이 대표발의했지만 정부 반대로 처리가 무산된 사안”이라며 “민주당이 다시 추진하겠다는 게 황당할 따름”이라며 여당을 겨눴다.

문제가 생기면 호들갑을 떨다가도 여론이 잠잠해지면 모른 체하는 건 정치권의 고질병이다. 여야는 이번에도 지역 민원 등 공약 실현의 걸림돌을 어떻게 돌파할지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했다. 정치권의 ‘코로나 공약’이 총선이 끝나면 다시 흐지부지될 ‘냄비 대책’이 되진 않을까 우려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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