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연의 데스크 시각] 코로나19와 안보실패
“우리들과 우리들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대한민국헌법 전문의 일부다. 이에 보듯 우리 헌법은 국민의 안전보장(안보)을 국가의 최고 목적이자 책무로 적시하고 그 책임을 국가수반인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전통적인 안보는 주로 군사적 침략으로부터 영토를 지키고 국가와 국민을 보호한다는 의미였다. 현대에 들어 군사적 의미뿐 아니라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질병 재해 기아 등을 포괄하는 소위 ‘인간 안보’ 개념으로 확장됐다. 전통적인 군사 안보만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안보를 위협하는 바이러스

신종 감염병은 우리 국민뿐 아니라 21세기 인류의 안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떠올랐다. 국경을 넘어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병원체는 테러보다 예측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일단 퍼지면 전쟁보다 전면적이고 핵무기보다 가공스럽다. 북한 핵무기도 공포의 대상이지만 파괴력으로 보면 바이러스에 비할 바가 아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초연결된 지구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전염병의 대유행에 인류는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며 “세계를 위협하는 가장 시급한 안보 현안은 전염병”이라고 단언했다.

신종 감염병은 지속적인 변이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돌출하는 상시적 재해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 역시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플루(신종인플루엔자),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6년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돌연변이 바이러스로 위협받고 있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그 주기를 5년으로 앞당겼다.

코로나19 사태는 신종 감염병이 안보 차원의 문제임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공공 보건뿐 아니라 정치 외교 산업 등 모든 분야에 치명적인 파장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입법·사법 기능이 무력화되고, 국방도 흔들리고 있다. 전국 산업 현장은 쑥대밭으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아무런 사전통보 없이 발이 묶이는 일도 벌어졌다.

'보건 안보'에 대한 인식 전환

감염병 방역활동의 성패는 발생 초기 대응에 달려 있다. 질병의 전파 속도가 빠르고 전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신속하고 과감한 초동 대응이 관건이다. 아무리 예방과 대비가 잘돼 있더라도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 여파가 쓰나미처럼 몰아친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코로나19 발생 단계에서 상황을 오판하고 초기 대응에 허둥댔다. 한국이 사태 진원지인 중국을 봉쇄하지 않은 대가로 ‘코로나19 창궐 대국’이란 오명을 쓴 채 국제적으로 한국인이 봉쇄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배경에는 전염병에 대한 정부의 안보관 결여가 자리잡고 있다. 안보는 정치와 외교에 앞서는 국가의 최우선 과제다. 신종 감염병이 안보 수준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했다면 초동 대응 과정에서 “관리 가능하다”는 섣부른 낙관론으로 골든타임을 놓치고, 중국발(發) 입국금지를 꺼려 국경 방역의 둑을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감염병 문제를 국가 안보의 영역에서 다루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신종 감염병을 국가 안전을 흔드는 큰 위협으로 인식하고 보건 안보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책무인 ‘국민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다.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