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충격’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한국 정부 외교 역량의 밑천이 드러나고 있다. “중국의 어려움이 곧 한국의 어려움”이라며 발원지인 후베이성을 제외한 중국발(發) 여행객의 한국 입국에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돌아온 것은 중국 지방정부의 연이은 한국인 격리조치다. 부족한 외교 실력보다 국민을 더 실망시키는 게 있다. 비판받을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행태다.

중국 지방정부의 한국인 입국자 강제 격리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26일 이뤄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장관 간 통화에서 왕 장관은 “불필요한 국가 간 이동을 줄이는 것이 감염 확산 차단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가 그제 사설에서 밝힌 것처럼 “한국인 격리는 외교 문제가 아니라 전염병 예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국 측 반응에 대해 정부는 별 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도리어 통화 내용을 발표하면서 왕 장관의 이 같은 언급을 빼놓아 “의도적으로 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왕 장관의 발언 내용은 중국 외교부 발표를 통해 알려졌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정부는 집값 급등,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등 국민의 공분을 자아낸 사안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법이 없었다. 코로나19 충격 이후에도 이런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중국인 입국금지 요청’ 청원은 76만여 명이 동의했을 정도로 공감을 얻었지만, 청와대는 한동안 묵묵부답이었다.

야당의 비판이 쏟아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면 우리도 입국 금지당할 수 있다”는 입장을 어제 내놓았다. 위기를 겪으면서 국민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비판받을 소지가 있는 외교적 사안에 대한 ‘모르쇠 전략’을 그냥 넘어가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