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직의 신성장론] 성장의 主엔진 '인적 자본' 축적이 관건이다
한국 경제는 ‘5년 1%포인트 하락 법칙’에 따라 소득이 늘지 않는 ‘제로 성장’을 향해 가고 있다. 이 암울한 경험적 법칙을 깨기 위해 장기성장률의 직하강을 반등시킬 비법을 고도성장한 나라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국민소득이 매년 8~9%씩 뛰는 나라, 8년만 일해도 소득이 두 배가 되는 나라, 30년 일하면 소득이 무려 13배나 되는 나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면 지구상에 이런 전설 같은 나라가 존재한다. 60년 전 한국이 그 주인공이다.

1960년대 초 이후 30년은 우리가 연 8% 이상의 초고속 장기성장률을 지속적으로 구가한 ‘고도성장의 황금시대’였다. 조만간 닥칠지 모를 제로 성장을 걱정하는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는 과연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신화 같은 30년이다.

경제 성장의 원동력에 대해 1950년대 이전 경제학자들은 기계와 같은 자본의 축적을 가장 중시했다. 그런데 1950년대 중반 로버트 솔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자본 축적은 지속적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없음을 증명했다. 자본이 부족할 때 잠시 고도성장할 수 있지만, 자본이 축적될수록 수익률이 점점 낮아지는 ‘수확체감의 법칙’ 때문에 자본 축적과 경제 성장이 점점 느려지다가 결국 멈춘다는 것이다. 솔로 교수가 창도한 ‘신고전파 성장이론’은 이런 자본 축적 대신 기술 진보가 지속적 성장의 원동력임을 주장했고, 당시 경제학계의 정설이 됐다.

이런 기존 경제학계에 한국의 지속적 고도성장은 커다란 충격을 줬다. 한 나라가 잠시 고도성장할 수는 있지만 자본이 늘면서 성장률이 점점 떨어진다는 당시 주류 신고전파 성장이론의 예측을 깨는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신고전파 이론에 따라 기술 진보가 한국 고도성장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한국이 기술 최전선인 미국의 기술진보율 2%보다 훨씬 높은 8%의 속도로 새 기술을 계속 개발했다는 비현실적 가정을 해야만 하는 커다란 난점이 있었다.

이에 합리적 기대가설 혁명을 이끌며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대의 로버트 루카스 교수와 동료 학자들은 한국의 기적 같은 성장을 설명하는 제3의 요인에 주목했다. 그 결과 ‘내생적 성장이론’이란 새로운 경제 성장이론이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에 걸쳐 탄생했다.

이 새로운 성장이론이 증명한 고도성장의 비밀은 한마디로 ‘경제 성장의 엔진은 바로 인적 자본’이라는 것이다. 인적 자본이란 근로자와 기업가에 체화된 지식 및 기술을 의미한다. 교육 등을 통한 인적 자본의 축적은 그 자체로 경제 성장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한계생산(수익률)을 증가시킴으로써 자본 축적과 기술 수준 증대까지 수반해 하락 추세 없는 고속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을 이들은 증명했다. 한국 사람들도 막연하게나마 추측했던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생각이 내생적 성장이론가들에 의해 정교한 경제이론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내생적 성장이론 관점에서 보면 어떤 정책이 한국의 고도성장에 기여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대표적 예가 초등학교 의무교육이다. 1950년대 초등 의무교육을 추진하면서 글 읽기와 산수 등을 익혀 인적 자본을 크게 늘린 노동력이 새로 형성됐다. 이들이 초등학교 6년을 마친 1960년대부터 일부가 섬유산업 여성 공장노동자로 일하는 등 대거 산업에 투입된 결과 성장률이 연 8%대로 급격히 증가했다. 따라서 내생적 성장이론은 1960년대 초 시작된 고도성장이 당시 정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이전에 보편교육을 통해 인적 자본을 축적한 국민 덕분임을 시사한다.

결국 ‘경제성장의 제1 원리’는 성장의 주 엔진인 인적 자본을 지속적으로 빠르게 축적하기만 하면 황금시대의 한국처럼 장기간 지속되는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우리가 성장 엔진인 인적 자본을 축적해 제대로 가동하기만 하면 5년 1%포인트 하락의 경험적 법칙을 반드시 깰 수 있다. 물론 이 명료한 해법을 실현해 제로 성장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인적 자본을 획기적으로 증대하는 혁명적인 성장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요구에 부응할 준비가 돼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