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맞춤교육
인터넷은 이 세상 문명에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왔고 예술 분야에도 이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 집 거실에서 베를린 필하모니의 연주를 생방송으로 볼 수 있다니! 인터넷 세대들이야 당연한 일로 여기겠지만 나같이 인터넷 이전과 이후 세대를 걸쳐서 사는 음악인에게는 가끔은 신기하고 믿기 어려울 따름이다.

예술교육 분야에도 당연히 새로운 교육방법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선생이 출장 중이라도 연주회나 콩쿠르를 앞두고 레슨이 절실한 학생들에게 화상채팅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응급레슨’도 할 수 있다. 대학 1학년 때 실기시험 곡으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4번을 쳤던 적이 있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운 곡이 아니겠지만, 당시에는 실기시험 연주 후 한 교수님이 그 곡 악보를 보고 싶어 했을 정도로 새로운 곡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이 곡의 음반을 딱 한 번만이라도 들어보는 것이었다. 수소문 끝에 한 지인을 통해 일본에 주문했는데, 결국 이 음반은 3개월 후에 도착했다.

유학 시절 뉴욕 카네기홀에서 금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독주회를 봤을 때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레코드 커버로만 보던 사람을 실물로 보다니 말이다.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없을 요즘 학생들이 불쌍해지기까지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치는 곡을 음반이나 영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연주자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까지 있다. 이런 현상이 선생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이제는 더 이상 곡을 가르치는 선생은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에둘러서 나는 ‘곡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친다’라고 표현한다.

가르치다 보니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한다. 연주할 때 급해지는 습성이 있는 학생은 나와 같이 식사를 할 때도, 산책을 할 때도 리듬이 빨라진다. 또 정리가 안 되고 부산한 연주를 하는 학생은 레슨을 끝내고 보면 항상 귀고리 한쪽 아니면 손수건이라도 반드시 피아노 위에 두고 간다. 목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작게 이야기하는 학생은 반드시 소심한 연주를 한다.

나는 결국 사람은 생긴 대로 연주하는 것이라고 믿게 됐다. 이제 선생이 해야 할 일은 각각의 학생 본성을 파악해 필요한 점을 보완해주는 맞춤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의식 세계와 접속해 무의식 세계를 수정해야 하는, 어렵고도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연주는 무의식의 행위라 봐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