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숨길 수 없는 세 가지
재채기도 마음대로 못하는 시국이다. 비염이나 알레르기로 기침이 심하거나 감기라도 걸린 참에는 아예 사람 많은 곳은 삼가는 것이 상식이다. ‘인간이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가난, 사랑(진심), 그리고 재채기’라는 탈무드의 명언처럼 숨길 수 없는 것을 숨기려면 탈이 나니 말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잘 이해가 안 된다. 순간적으로 나오는 재채기는 인위적으로 숨기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가난이나 사랑은 어떻게든 숨길 수 있지 않을까? 아카데미 4관왕 쾌거로 세계 영화사에 새로운 장을 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은 가난을 후각으로 표현한다.

기택(송강호 분) 가족이 사는 습하고 어두운 반지하 집의 습기와 곰팡이, 벌레, 쪽창으로 쏟아지는 행인들의 오물 등은 관객의 후각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부자인 동익(이선균 분) 가족 모두 인지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특유의 ‘냄새’는 ‘기생충’의 비극적 엔딩을 예측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이자 전 세계 관객을 몰입하게 한 공통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누구나 평등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면으로 무장한 21세기에서 숨길 수 없는 빈부격차의 민낯을 보여주는 장치로 더할 나위 없는 것이 ‘냄새’다. 군더더기 없는 미장센과 적재적소의 대사들은 ‘냄새’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대다수 관객은 관람 후에도 맴도는, 찜찜한 그 무엇을 안고 극장을 나선다.

20%에 가까운 시청률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스토브리그’(SBS)는 또 다른 의미에서 숨길 수 없는 한 가지를 무기화한다. 만년 꼴찌 프로야구단 드림즈의 신임 단장 백승수(남궁민 분)를 통해 거대한 자본과 실적으로 움직이는 프로스포츠계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그 키워드는 숨길 수 없는 또 한 가지인 ‘사랑, 혹은 진심’이다.

연봉이 수십억원인 스타 선수들과 최저 시급 연봉으로 버티는 선수들이 한 팀에 공존하는 프로야구단은 존재 자체가 빈부격차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실력으로 결정된 외피일 뿐, 야구에 대한 꿈과 열정에는 차이가 없다. 드라마 속 백 단장은 자본의 논리로만 돌아가던 구단에서 구성원 모두가 품고 있는 꿈과 열정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가치가 없으니 해체하겠다는 구단주 대행 권경민(오정세 분)조차 백 단장의 거침없는 행보에 동화된다. 결국 사랑과 진심으로 어우러진 팀워크는 자본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끌어낸다.

흔히 말하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심장 전문의 로버트 엘리엇의 저서 《스트레스에서 건강으로(From Stress to Strength)》에 나오는 ‘싸울 수 없으면 흐르는 대로 맡겨라(If you can’t fight, and you can’t flee, flow)’에서 비롯됐다. 숨길 수 없는 세 가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흐름에 맡기다 보면 의외의 결과에 도달한다.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상업성과 예술성의 적절한 조화로 풍자한 ‘기생충’이 세계 각국에서 재개봉하기 시작하고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실제 스토브리그 중인 프로야구계를 비롯한 프로스포츠계 전체에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코로나19의 확산 또한 세상의 영민한 흐름에 맡기다 보면 어느새 지나가고 일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