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산업이 백척간두의 위기다. 쌍용자동차, 한국GM, 르노삼성자동차 등 중견 3사는 국내에서는 수입차, 해외에선 중국산 자동차에 밀려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최근 발표된 실적에서 확인된다. 쌍용차는 지난해 281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10년 만에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전년 적자폭(-642억원)의 네 배가 넘는다. 한국GM과 르노삼성도 지난 1월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각각 -47.1%, -54.5%로 반토막 났다. ‘판매 부진→연구개발(R&D) 위축→소비자 외면’의 악순환이다.

부진의 늪에 빠졌다가 지난해 가까스로 ‘회복 시동’을 건 현대·기아자동차 역시 ‘우한 쇼크’라는 복병을 만나 다시 악전고투하고 있다. 중국 납품업체들로부터 부품을 받지 못해 제네시스, 그랜저, 쏘나타 등 거의 모든 차종의 생산이 멈췄다.

전·후방 고용유발 효과가 큰 자동차산업의 부진은 그 자체로 경제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 더 큰 문제는 다른 주력 산업들 사정도 자동차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화학, 철강은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중국 등 주요국 수요 둔화 여파로 휘청거리고 있다. 업종 대표기업인 롯데케미칼과 포스코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3.1%, 30.2% 쪼그라들었다. 4차 산업혁명 열풍으로 그나마 사정이 나을 것으로 기대했던 반도체산업도 ‘올 상반기로 예상한 업황 반등 시점이 한참 뒤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우리 기업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해외 후발주자들의 맹추격은 더 거세질 것이다.

세계 각국에 소비재는 물론 부품 등 중간재를 공급하는 중국 경제의 심각한 차질로 글로벌 기업들도 비상이다. 하지만 주요 산업국가 가운데 한국이 가장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점은 깊이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전통 제조업에 의지해온 낡은 산업구조와 중국에 의존하는 공급망 편중 탓이다. 국내외 주요 전망 기관들 사이에선 우한 폐렴 여파로 1분기 중국이 ‘제로(0%) 성장’으로 급전직하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는 판이다.

정부가 위기 타개를 위해 기업인들과 머리를 맞대는 등 부산한 움직임이지만 당장 뾰족한 대책이 나올 리 없다. 문제를 풀기 위해선 현대차와 달리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심각한 조업 차질을 겪지 않고 있는 까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 중국 정부가 희토류 공급을 끊는 등 보복 조치를 취하자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로 삼았다. 동남아시아의 대체 조달처를 늘리는 일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 덕분에 ‘우한 쇼크’ 타격을 덜 받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산업구조를 제조업 이외 분야, 특히 바이오 정보기술(IT) 등으로 다변화하는 일도 시급하다. 중국의 영향에 좌우되지 않을 ‘미래 먹거리’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 ‘경제 생태계’를 다양화하는 것만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우한 쇼크와 같은 돌발 위험의 파장을 최소화하는 근본 대책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힘들고 더디더라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