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을 수량·위치·가격 기준으로만 보면
삶과 동떨어진 투기·소유 대상 전락할 뿐
주변과 관계 맺고 생활하는 집 되게 해야

김광현 < 서울대 명예교수·건축학 >
[전문가 포럼] '사는(買) 집'이 '사는(住) 집' 되는 주거정책 펴야

‘사는(買) 집이 아니라 사는(住) 집을’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집을 사려고만 하지 말고, 그 안에 들어가 실제로 사는 집도 함께 생각하자는 뜻이다. 이 글귀를 대한주택공사(현 LH) 광고 문안에서 봤으니 꽤 오래됐다. 그런데 요즈음은 ‘사는(買) 집’은 소유나 투기의 대상인 집, ‘사는(住) 집’은 윤리적인 생활 태도를 갖춘 선(善)한 집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그저 들어가 사는 집이라고 ‘사는(住) 집’이 되는 게 아니다. 집은 ‘사는(買)’ 게 아니라 ‘사는(住)’ 것이라는 말 한마디에 주택 문제가 다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이 쉽지 이렇게 넓고 번잡한 대도시에서 ‘사는(買) 집’을 멀리하고 내 집을 ‘사는(住) 집’으로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나 하는 말일까?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은 거의 다 남이 만들어준 기성복이다. 좋은 옷이 많아 골라 입으면 된다. 굳이 그 옷을 제작하는 법까진 알 필요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남이 지어놓은 집을 사는(買) 것이니 옷으로 치면 기성복이다. 그러나 옷과 집은 다르다. 옷은 내가 고르고 나 혼자 입지만, 집은 적어도 가족과 함께 고르고 이웃과 함께 살게 된다. 더구나 집이란 들어가 산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웃과 함께 생활의 흔적이 계속 누적돼야 비로소 ‘사는(住) 집’이 된다.

준공한 때의 주택과 그 이후의 주택은 공간의 의미와 쓰임새가 다르다. 준공된 주택은 그냥 물질적 의미의 주택이다. 그러나 준공 이후의 주택은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사물과 함께 서서히 반영돼가는 ‘주거’를 뜻한다. 주택을 주거로 생각해야 ‘사는(買) 집’이 ‘사는(住) 집’이 되는 법이다. 건축가가 건축주의 의견을 잘 반영해 설계하고 시공했다고 하자. 그래도 준공된 직후의 주택은 결국 남이 지어준 주택이다. 건축가는 ‘주택’을 짓지만 사는 사람은 ‘주거’를 짓는다. 그러나 주택이 없는데 주거가 생길 리 없다. 주택이 있어야 주거가 생긴다.

엄밀하게 말해 집은 내가 지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집이 된다. 산골에 사는 사람들의 집은 대부분 누가 와서 지어준 게 아니다. 자신이 손수 지었고 계속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곳에서 살아갈 것이므로 그들이 사는 집과 그들의 생활이 일치된다. 이런 집이야말로 ‘사는(買) 집’이 아니라 ‘사는(住) 집’이다.

하지만 거주하는 것과 집을 짓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시대에 살며 내가 살 집을 스스로 짓는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도시에 사는 사람 중 스스로 집을 짓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건축가에게 부탁해서 지은 집도 ‘산(買) 집’의 한 종류다. 사정이 이런데 남의 손으로 지은 집을 사서(買) 들어가 처지가 달라지면 팔겠다는 것을 투기나 소유의 대상인 집이라 단죄할 수는 없다.

‘사는(買) 집’은 ‘주택’만을 말하지만, 들어가 ‘사는(住) 집’은 생활이 포함된 ‘주거’에 관한 것이다. 주거는 주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주거는 학교에도, 오피스 건물에도, 어떤 건축물에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공간과 장소가 모두 주거의 대상이다. 우리 동네에 시장이 없으면 이웃 동네에서 장을 보고, 이발소가 없으면 이웃 동네의 이발소를 이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렇게 우리 생활은 근접한 주변 생활권과 관계를 맺고 사는 ‘주거 집합’ 속에서 이뤄진다.

‘주택=주거’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엔 주택정책은 있어도 주거정책은 없다. 주택과 더불어 어떻게 사는가(住)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여전히 주택의 수량, 위치, 가격을 열심히 따지는 주택정책만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주택정책은 오히려 ‘사는(買) 집’을 부추기고, ‘사는(住) 집’의 주거는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고 있다. ‘사는(買) 집’을 ‘사는(住) 집’으로 만드는 구체적인 방식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사는(買) 집’은 투기의 대상, 사는(住) 집은 선한 집이라고 구분하는 것에만 만족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주택정책이 아니라, ‘산(買)’ 주택일지라도 ‘사는(住)’ 주거로 이어지게 하는 섬세한 주거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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