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지구촌 젊은이들의 분노
젊은이들의 분노가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해 6월 홍콩 사태를 필두로, 레바논 이집트 이라크 등 중동과 칠레 에콰도르 등 남미에서 동시다발 시위가 벌어졌고, 인도 방글라데시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도 새해를 시위와 함께 맞았다. 최근엔 이란의 ‘40년 신정(神政) 체제’에마저 균열을 만들고 있다.

나라마다 이유는 달라도 그 중심에 ‘청년의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 반세기 전 유럽의 ‘68혁명’이나 ‘앵그리 영맨’의 연장선으로 보이지만 전개 양상은 사뭇 다르다. 정권이 무능·부패하거나 권위주의적 통제를 시도할 때 좌우 가리지 않고 저항한다. 이념이 아니라 공정과 불공정의 문제인 것이다.

그 중심에 1990년대생(20대)들이 있다. 3800년 전 함무라비왕 때도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했듯이, 젊은이의 반항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하지만 지금 20대는 과거 어느 세대보다 교육수준이 높고 경제난, 불평등, 정치 억압 등 불공정한 환경을 참지 못한다. 국내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에서 “복종, 권위를 통한 강압적 통제가 더는 통하지 않는 세대”라고 한 것이 지구촌 90년대생의 공통점인 셈이다. 대만의 선거 판도를 바꾼 것도 ‘홍콩이 대만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여긴 청년들이다.

이들은 나면서부터 인터넷과 IT기기를 접했고, 소셜미디어로 무장한 ‘디지털 원주민’이다. 주동자가 없어도 언제 어디서든 집결할 수 있고, 네트워크 연결에 익숙해 세계 누구와도 연대한다. 그러니 시대 변화에 굼뜬 아날로그 정부라면 디지털 시위대에 쩔쩔맬 수밖에 없다.

최근 이란이 그런 처지다. 미국과의 갈등으로 거센 반미(反美) 물결이 일 줄 알았는데, 여객기 오인 격추사실이 드러나자 시위 표적이 권위주의 정권으로 급변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그들(정부)은 우리 적이 미국이라고 거짓말하지만, 우리 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외친다. 게다가 수도 테헤란의 한 대학에선 정부가 밟고 다니라고 바닥에 그려놓은 미국·이스라엘 국기를 학생들이 피해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처지·성향에 관계없이 국가의 부당한 행태에 함께 분노한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이남자(20대 남자) 이반’ 현상이 두드러진 것도 마찬가지다. 청년세대를 무시하거나 표(票)로만 봤다가는 심각한 분노에 직면한다는 게 지구촌 시위 사태의 교훈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