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예술영재에 대한 진정한 후원Ⅱ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하고도 또다시 콩쿠르에 나가는 사람을 보고 욕심이 지나친 게 아니냐는 일부의 지적이 있다. 그렇지만 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1등을 해도 기획사로부터 제안이 오지 않아 또 한 번의 어려운 콩쿠르에 도전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오죽했으면 ‘competition after competition’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기획사 입장에서 보면 이 모든 상황이 설명된다. 날고 기는 연주자 중 한 사람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명분이 확실해야 한다. 연주자 출신 국가의 문화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그 나라 기업의 세계 클래식시장 기여도는 어느 정도인가? 그 국가의 기획사들과 교류가 활발한가? 이런 질문 중 어느 것 하나 선뜻 답하기 어렵다. 내가 지금까지 심사한 여러 콩쿠르 중 우리나라 기업이 후원사로 들어 있는 콩쿠르는 하나도 없었다.

이웃 일본의 기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등 주요 콩쿠르의 공식 후원사가 됐다. 세계적 기획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획사가 있고, 외국 심사위원들은 옆집 드나들 듯 일본에 초청된다. 얼마 전 친한 독일인 교수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은 음악 선진국인데 정작 한국인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고. 그만큼 우리는 세계 음악시장의 중심에서 멀어져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음악 영재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 시간 우리 영재들은 우군 없이 고군분투하며 ‘게릴라전’을 하는 셈이다. 상대는 사방에서 지원군에 둘러싸여 있는데 말이다. 신문에 콩쿠르 수상 소식이 들릴 때마다 우리는 환호를 보낸다. 그런데 얼마 안돼 또 다른 수상자가 나오는 순간, 앞선 수상자는 철저히 잊혀진다.

우리가 정녕 이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박수만 보내서는 부족하다. 이들이 세계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놔줘야 한다. 외국과 교류를 시작하고 해외 유수 콩쿠르와 페스티벌 후원사 명단에 우리나라 기업의 이름을 올려야 한다. 세계인들이 모여드는 ‘국제음악시장’을 만들어야 하며, 해외 기획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협업할 수 있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획사가 세워져 세계 음악시장의 중심지가 돼야 한다.

우리의 자랑스런 영재들이 콩쿠르 입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기보다는 세계 무대 위에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아름다움을 전하는 ‘국제 전령사’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어른’의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