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생일 축하 메시지’ 전달을 둘러싸고 주말 사이에 벌어진 일은 ‘한반도 운전자론’의 허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미국 방문 후 귀국길 인천공항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생일 덕담을 전달했다”고 브리핑하면서 소동이 시작됐다. 우리 정부의 역할을 자랑하려는 목적이었겠지만, 북한이 비난 담화를 발표하면서 망신스러운 결말로 치닫고 말았다.

북한은 담화에서 “생일 축하 인사가 담긴 트럼프 친서를 특별한 연락채널로 직접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화급하게 축하 메시지를 전한 행태를 “호들갑”이자 “중뿔나게 끼어드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주제넘게 나서지 말라’는 면박도 빼놓지 않았다. 외교·안보 최고사령탑이 직접 관여한 일의 어이없는 전개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은 국민은 없을 것이다.

적잖은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생일 메시지 전달 과정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도 망신을 자초한 게 사실이라면 무능의 극치다. 만약 전후 사정을 알면서도 밀어붙였다면 용서받지 못할 기만이다. 정부는 북의 담화 이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북 관계 개선에 도움되지 않는다며 뭉개는 모습이다. 정 실장은 몇 달 전 국회에 출석해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이동식 발사대에서 쏘기는 어렵다”는 황당한 말을 태연하게 한 전력도 있다. 또 유야무야한다면 대북정책의 신뢰는 급전직하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운전자 역할의 충실한 수행을 위해서도 전후 사정을 분명하게 따지고 밝혀야 한다. 북의 주장이 과장된 것인지, 미국과의 대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는지를 점검하고 적절한 외교적 조치를 취해야 국제사회에서 최소한의 위신과 품격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미·북 사이에서의 ‘눈치 보기’를 운전자론으로 포장하는 공허한 외교는 당장 폐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