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에 제1노총 내준뒤 강경해져
과열 경쟁땐 산업현장 혼란 불보듯

백승현 경제부 기자 argos@hankyung.com
[취재수첩] 한국노총 선거를 바라보는 걱정스런 시선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차기 위원장을 뽑기 위한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한국노총은 오는 17일까지 전국 순회 합동연설회를 열고 21일 앞으로 3년을 이끌어갈 새 위원장을 선출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노총은 지금까지 정부가 주요 노동정책을 설계하고 입법으로 마무리될 때까지 노정협상의 파트너 역할을 해왔다. 노동계를 대하는 정권의 ‘온도’에 따라 때로는 투쟁 성향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체로 정부와의 협상 또는 노·사·정 대화를 통해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자신들의 요구도 관철해왔다. 그랬기에 역대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는 누가 위원장이 될지, 향후 노선은 어떨지 등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지난달 25일 고용노동부 발표에서 사상 처음으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 제1 노총 지위(조합원 수 기준)를 내줬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양자 대결로 형성된 선거 유인물과 합동연설회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기호 1번인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은 “대기업 무노조 경영을 분쇄하고 거침없는 조직화로 제1 노총의 위상을 재정립하겠다”고 했다. 경쟁자인 김동명 화학노련 위원장은 “조직화 사업에 인력의 절반을 배치해 한국노총의 자존심을 건 투쟁을 준비하겠다”고 주장했다. 누가 차기 위원장이 되든지 빼앗긴 고토 수복을 위해 민주노총과의 일전을 선언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노동 존중을 외치던 정부 의지는 실종됐다. 멈춰버린 역사의 시계를 돌리겠다” “이미 파탄 난 정책협약 재검토 및 새로운 정치방침 결정” 등 공약집은 전에 보기 힘든 강경한 단어들로 채워졌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민주노총 선거판을 보는 듯하다는 평가와 함께 향후 노정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조의 조직 확대 노력은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과속 경쟁이 붙으면 두 노총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공공부문 일선 현장은 현 정권 출범 후 내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전국 건설현장에서는 양 노총의 일자리 쟁탈전으로 폭력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노조 조직률이 불과 2년 만에 1.5%포인트나 급상승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이런 가운데 양 노총이 일제히 조합원 확대 경쟁을 시작하면 벌어질 산업현장 혼란은 불 보듯 훤하다.

“한국노총은 그동안 투쟁할 때는 투쟁을, 대화할 때는 대화를 해왔다. 하지만 요즘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 8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노·사·정 신년인사회에서 한 말이다. 내부에서조차 커지고 있는 한국노총 선거를 바라보는 걱정스러운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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