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시한까지 정하면서 철폐를 약속했던 규제가 절반도 폐지되지 않았다는 보도는 공직사회가 규제 개혁에 얼마나 소극적인지를 거듭 보여준다. 안전·고용 문제처럼 민감하거나 거창한 규제도 아니고 중소기업·소상공업계에서 일상으로 부딪히는 행정편의 규정을 바꾸자는 것인데도 이 모양이다.

이 총리가 ‘중소기업·소상공인 규제혁신 방안’이라며 이 부문 규제 45건을 지난 연말까지 철폐하겠다고 한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당시 ‘국정현안검검조정회의’라는 행사에는 관련 부처 장관들도 다 참석했고, 총리 지침에 동의도 했다. ‘의료기관 상호 명칭제한 완화’ ‘예약서비스 택시업체의 가맹사업 등록 앱으로 대체 허용’ ‘하수도 부담금 카드납부 허용’ 같은 것들이다.

해가 바뀐 지도 열흘이 다 돼 가지만 총리가 다짐했던 중소기업·소상공업계의 우선 철폐 규제 45건 가운데 없어진 것은 20건에 불과하다. 공식적으로는 법제심의가 진행 중이고, 기술구현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해관계자들과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들 한다. “노력은 하고 있다”고도 한다. 어느 부처나 이런 식이다. 총리 지침을 직접 챙기는 국무조정실이라고 별반 다를 것도 없다. 규제 개혁에 관한 한 이전이나 현 정부나 판박이 답변이다. “원격의료는 시행하겠다”는 대통령 발언까지 공수표로 만든 규제행정의 한국적 현실이다.

공직자라면 본인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고위직일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이 총리도 마찬가지다. 안 그래도 ‘총선 차출설’이 나도는 걸 보면 마음은 벌써 선거판에 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약속만큼은 확실하게 매듭짓고 총리실을 떠나든 말든 해야 할 것이다. 45개 규제 철폐는 난제라기보다 관심이나 성의 문제로 보이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단시일 내에 철폐하는 게 어렵다면 후임 총리에게 최우선 인계 업무로 삼기 바란다. 차제에 정부는 말로만 ‘규제개혁’을 외칠 게 아니라 아예 ‘규제철폐 책임자’를 정할 필요가 있다. 국무총리도 좋고 경제 혹은 사회부총리로 장관급 이상이어야 효과가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