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카를로스 곤이 벗긴 日의 '가면'
일본 나라현 사쿠라이시에 있는 고분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은 장축의 길이가 275m에 이른다. 한반도계 기술로 축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이 고분은 한반도에 있는 그 어떤 무덤보다 크다. 야요이시대 후기 기타큐슈 지방에서 제작된 동검(銅劍)이나 동모(銅矛)도 한반도 출토품보다 길이와 폭이 긴 것이 특징이다.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일반적 인식과 달리 고대 일본인은 ‘큰 물건’을 좋아했던 셈이다.

다수의 일본 학자는 고대 일본 유적과 유물의 거대함을 두고 고대 일본 사회의 경제력이 막강했으며, 다수의 인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권력이 존재했음을 방증하는 증표로 본다. 따뜻한 기후 덕에 일본 열도의 생산력이 한반도의 세 배에 달하는 것을 ‘정상 상태’로 보는 학자마저 있다.

뿌리 깊은 후진국 콤플렉스

반면 고대 일본 유적·유물의 ‘빅 사이즈’는 일본인의 한반도와 대륙 문화에 대한 콤플렉스가 반영된 것이란 시각도 있다.

가미가이토 겐이치 전 오쓰마여대 교수는 “한반도에선 무덤 크기가 작은 대신 비슷한 시기에 (무덤보다 실용적인) 대규모 성곽이 축성됐다”며 “한반도의 세형동검은 실전용이지만 일본 열도의 동검과 동모는 너무 커서 의례용·제사용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부에서 도입한 ‘선진 기술’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외형을 극대화하는 형태로 드러낸 것은 유아적인 ‘후진국 콤플렉스’라는 지적이다.

고대 세계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일본인이 남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한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적지 않다. TV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백인으로 구성된 외국인들이 일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많이 다룬다. 각종 광고에선 요즘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세계 최초’ ‘국제 평가 1등’ 같은 다소 촌스러운 표현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여전히 ‘대외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인이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것이 공격적인 배외주의(排外主義)와 결합되는 경우도 잦다. 외국인의 일본 품평은 일본의 음식과 전통문화, 질서의식 같은 것을 높게 평가할 때만 선별적으로 수용될 뿐이다. 일본의 치부를 드러내거나, 사회의 내밀한 곳에 외부인이 접근하려 하면 거센 반발을 각오해야 한다.

모습 드러낸 이중성

이 같은 일본인들의 배타적 대외 콤플렉스의 실상이 명확히 드러난 사건이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의 ‘일본 탈출’이다. 곤 전 회장은 2조1000억엔(약 22조원)의 부채 탓에 빈사 상태에 허덕이던 닛산자동차를 되살린 경영자다. 하지만 2018년 11월 도쿄지검에 배임 혐의 등으로 전격 체포된 이후 그는 네 차례나 구속됐다. 과거 일본 사법당국이 조 단위 분식회계를 했던 도시바와 올림푸스의 일본인 경영진에 면죄부를 줬던 것과는 대조되는 행보다.

곤 전 회장이 일본인의 것이라고 여겨졌던, ‘메이드 인 재팬’이란 뜻도 지닌 일본의 대표기업 닛산(日産)자동차의 최고위직에 올라 일본인이 감추고자 했던 문제점을 직시했던 것이 엄혹한 대우를 받은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본 사회는 곤 전 회장 개인의 부도덕한 치부와 도주의 불법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그가 영화 같은 탈출을 선택한 배경에 더 주목한다. 역설적으로 곤의 일본 탈출이 부각한 것은 오랜 콤플렉스에서 잉태된 일본의 이중성이 아닐까 싶다.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