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예술영재에 대한 진정한 후원 (1)
그동안 우리는 출중한 기량을 지닌 젊은이를 많이 봤다. 김연아 박태환 손흥민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을 요즘 젊은이들은 척척 해내고 있다. 이들은 간절히 바라던 소중한 꿈을 이루며 목표를 달성했다.

클래식 음악계에도 이들 못지않은 ‘스타’가 탄생했다. 손열음 김선욱 조성진 등 많은 영재가 줄을 섰다. 이들 역시 꿈에서도 불가능하게 여겨지던 일을 현실에서 이뤘다. 단일민족으로 이렇게 많은 콩쿠르 입상자를 배출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스포츠 영재와 예술 영재들이 메달을 땄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스포츠와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르다.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굳이 꼽자면 예술의 목표는 음악의 경우 무대 연주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기록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음악 콩쿠르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연주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 세계가 인정하는 공연장인 미국 뉴욕 카네기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홀 등에서 연주 기회가 생겨야 한다. 이 기회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기획사(매니지먼트)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훌륭한 상품도 세계 유명 백화점에 들어갔을 때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더 인정받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세계 최고 콩쿠르에서 ‘메달’을 땄다고 해서 자동으로 기획사에 소속되는 건 아니다. 50년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국제적 명성의 콩쿠르에서 상을 받으면 세계 최고 기획사들로부터 ‘러브콜’이 쇄도했다. 심지어 본인에게 유리한 조건을 얻기 위해 기획사들에 배짱을 튕기며 ‘딜’을 할 수도 있었다. 즉 ‘콩쿠르 1등=기획사 소속’이라는 등식을 통해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콩쿠르가 늘어나고 기획사도 증가했다. 게다가 날고 기는 연주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연주자, 콩쿠르, 기획사들이 이합집산하듯 서로 뒤엉킨 춘추전국시대 모양새다. 그러니 콩쿠르에서 1등을 하고도 기획사에 소속이 안 돼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또 다른 콩쿠르에 나가야 하는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