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日 집값 급등에 대책 잇따라
규제 땐 '佛 우유 사태' 재현 우려

서욱진 국제부 차장
[편집국에서] 집값 과열 한국만의 현상 아냐…세계는 지금 전쟁 중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최근 ‘집값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파리시는 저소득 가구가 시세의 반값에 살 수 있는 보조금 지원 주택을 짓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9월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파리 아파트는 3.3㎡당 4350만원으로 프랑스 평균 집값보다 네 배가량 비싸다.

독일 베를린시는 최근 5년간 50% 이상 오른 임대료를 잡기 위해 올해부터 5년간 임대료를 동결하는 대책을 내놨다. 독일 집값은 2008년 이후 세 배, 임대료는 두 배 정도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성장률 저하를 막기 위해 ‘극약 처방’으로 내놓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유럽의 부동산을 들쑤시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1%를 밑돌면서 유럽 주요 도시의 집값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ECB가 2014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이후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슬로바키아 아일랜드 등 일부 유럽 국가의 집값은 40% 넘게 올랐다.

가까운 일본도 마찬가지다. 도쿄 등 수도권 신축 맨션(한국의 아파트에 해당) 가격은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 일본 부동산경제연구소 집계 결과 지난해 1~10월 일본 수도권 신축 맨션의 평균 거래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4.2% 상승한 6089만엔(약 6억5530만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가였던 1990년의 6123만엔(약 6억5896만원) 수준에 29년 만에 육박했다.

집값 과열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저금리와 이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이 세계적인 집값 상승을 가져왔다. 한국에서도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민간 상품인 아파트의 가격을 정부가 통제하는 분양가 상한제가 나왔다. 지난달에는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담보 가치를 ‘제로’로 정해 대출을 아예 금지하는 등 강력한 규제가 담긴 ‘12·16 대책’까지 발표했다.

각국이 ‘집값 잡기’에 나섰지만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파리는 건축허가가 까다로워 시내에 주택 공급을 늘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독일의 임대료 통제에 따른 부작용 우려도 크다. 집주인들이 임대를 포기하고 주택을 매각하면 공급 부족으로 임대료가 더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1995년 임대료 통제를 강화하자 2000년대 중반 임대주택 공급 물량이 15% 감소했다.

프랑스의 혁명가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우유 가격 통제는 정부가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집권 후 “모든 프랑스 아동은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며 우유 가격 인하를 지시했다.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낸 그의 서슬퍼런 위협에 우유값은 잠시 떨어졌지만 얼마 가지 않아 급등세를 보였다. 농민들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젖소 사육을 포기하고 육우로 내다팔았기 때문이다.

로베스피에르가 농민들을 불러 젖소를 키우지 않는 이유를 캐묻자 농민들은 건초값이 너무 비싸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로베스피에르는 건초값을 내리라고 지시했고, 건초 생산업자들은 원가도 못 받는 건초를 불태워버렸다. 이런 과정에서 공급이 부족해진 우유값은 폭등했고, 귀족만 먹을 수 있게 됐다. 로베스피에르는 시장을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의 의도와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 한국에서도 요즘 시장 기능을 마비시키는 과도한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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