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복지 위주 vs 투자 중시…차이 나는 韓·日 세제개편
일본에서는 대체로 문재인 정부를 좌파 정권으로 보는 반면 한국에서는 아베 신조 정부를 우파 정권으로 분류한다. 그런 만큼 한·일 간 정책 색깔도 크게 다르다. 연말에 내건 양국의 세제개편 방향을 봐도 대조적인 면이 드러난다.

한국은 지난 11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포용적 복지국가를 완성하겠다”며 법인세 인상과 부가가치세 강화 등 증세론을 꺼내 들었다. 한국과 달리 일본 여당(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은 하루 뒤인 지난 12일 기업의 벤처투자에 대한 법인세 과세소득 공제 및 초고속 이동통신(5G) 보급 우대 등을 담은 ‘2020년도 세제개정 대강(大綱)’을 발표했다.

이처럼 일본 세제개정의 주된 내용은 투자 촉진과 기업활동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개인 대상의 세제개편에서도 노후 자산 형성을 유도하는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 기한 연장 및 확정갹출형 연금(iDeCo) 확대, 장기소유 토지 매각 시 양도소득세 일부 공제 등 내용이 눈에 띈다. 복지 강화의 하나로 편모·편부 가정에 대한 소득공제 확충도 들어 있기는 하나, 이는 세제개정 대강의 일부에 불과하다(연간 소득 500만엔 이하 편모·편부 가정에 적용하던 소득공제를 미혼자로 확대 적용하고 공제 금액을 27만엔에서 35만엔으로 증액한다).

‘복지 중시냐, 성장 중시냐’라는 노선을 두고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다. 어떤 정책을 추진할지는 해당 사회의 가치판단을 반영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복지 중시든, 성장 중시든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사회의 만족도(후생)도 심히 내려간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복지와 성장’ 또는 ‘공평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원칙의 균형을 달성하는 것이 사회 후생을 높여 준다. 유감스럽게도 두 원칙은 서로 상반 관계를 갖는 경향이 있어 양자의 균형 달성은 참으로 힘든 여정이다. 그렇더라도 세금으로 보수를 받는 정책당국자들에게는 그 힘든 여정을 실현해가야 하는 책무가 있다.

일본보다 훨씬 빠른 저출산·고령화의 진행으로 사회보장·복지 지출이 급증하는 한국도 이제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가 꺼지고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급전직하했다. 저출산·고령화 진행과 맞물린 사회보장관계비 및 낭비성 정부지출 확대가 재정 운용의 경직성을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내각부 ‘국민경제계산’ 자료에 따르면 ‘아베노믹스’ 이전인 1991∼2012년의 평균 실질 경제성장률은 0.9%에 머물고 있다. 소위 ‘잃어버린 20년’의 실태다.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된다. 아베노믹스 기간 평균 성장률(2013∼2018년)은 1.3%로 높아졌다. 이전에 비해 0.4%포인트 상승에 불과하나 수출기업 이윤 증대와 취업난 해소로 불만 표출은 적은 편이다.

일본에 비하면 한국은 부(富)의 축적이 훨씬 적은 나라다. 일본은 가계 금융자산도 막대하고 세계 제일의 대외자산 보유국인 반면, 한국은 가계부채 문제도 심각하며 보유 대외자산도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부의 축적을 가져오려면 세제개편도 파이(소득)를 키우는 쪽으로 유도해야 할 텐데 ‘부자 증세’보다 한발 더 나아간 ‘보편적 복지’라는 이름 아래 누진 증세가 강화되는 인상이다. ‘복지 충실’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누진 증세는 자칫 투자를 크게 위축시켜 엄청난 후생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소의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