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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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발표한 ‘2020 경제정책방향’은 희망보다 걱정을 키운다. ‘실패한 정책’이라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 ‘재정 퍼붓기’를 더 밀어붙이겠다는 독선에 가까운 결기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어서다. 꼭 필요한 중·장기적인 경제체질 개선은 뒤로 한 채 2.4%로 정한 성장률 달성을 위한 단기 대책에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문 대통령이 “경제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성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는 지론을 반복한 점이 특히 실망스럽다. 정부 정책의 성과라며 제시한 스타트업 활성화, 소득격차 완화, 고용시장 회복 등은 사실관계에 대한 오독이거나 왜곡이다. 문 대통령 말처럼 ‘유니콘 기업’이 3년 새 2개에서 11개로 늘었지만, 4차 산업혁명 진전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라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스타트업 규제가 하나 없어지면 3개가 새로 생긴다”는 말이 회자되는 것처럼 정부의 발목잡기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 게 현실이다.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의 53%는 한국에서라면 회사 운영 자체가 어렵다는 보고서가 나올 정도다.

‘소득격차 완화’도 보고싶은 통계만 본 것에 불과하다. ‘하위 20%’의 가처분소득은 올 2분기까지 6분기 연속 추락했다. 3분기 들어 살짝 개선됐지만, 단기간 급락에 따른 기술적 반등의 성격이 짙다. ‘고용시장 회복세’ 역시 세금으로 만든 ‘노인 알바’를 빼고 나면 속빈 강정이다. 노동시장 주력인 30·40대 고용과 제조·금융업 등 양질의 일자리는 기록적인 감소세다.

대통령은 “더 역동적이고, 더 따뜻한 경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 정책 이후 우리 경제는 역동적이거나 따뜻해져 본 적이 없음을 외면해선 안 된다. 기업과 인재가 해외로 탈출하고, 서민·자영업자들이 고용시장 바깥으로 밀려나면서 냉기가 확산되고 있다. 역대 최대인 512조3000억원의 내년 예산을 자랑하듯 언급했지만 돈을 덜 풀어서 경제위기가 온 게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올해 예산증가율은 9.5%로 내년(9.1%)보다 높지만 성장률은 1%대 추락이 유력하다.

문 대통령이 ‘포용’과 ‘혁신’을 강조하며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무제도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한 것도 단순논리의 지겨운 반복이다. 그 방향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이고 획일적 기준을 강제하는 데 대한 반대를 ‘반(反)혁신’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돈보다 규제를 풀고, 계획보다 시장을 앞세워야 포용도 혁신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