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수세' 트럼프-시진핑
1단계 무역합의에 도달했지만
경제패권 다툼은 지속될 듯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美·中 간 무역 마찰과 '대한민국 위기론'

또 다른 10년, 2020년대를 앞두고 지난 10월 초 이후 끌어온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안이 공식화됐다. 세계와 한국 경제로 봐서는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양국 간 무역마찰이 모두 끝나는 ‘빅딜(혹은 메가빅딜)’은 아니다. 경제패권 다툼의 속성상 영원히 불가능할지 모르는 타협을 향한 첫걸음일 뿐이다.

미·중 간 무역협상 1단계 합의는 ‘국익’ 이상으로 수세에 몰렸던 시진핑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익이 감안된 결과라는 점에서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시 주석은 경기 침체로 정치적 입지가 악화일로에 있었다. ‘바오류(6%대 성장)’를 지킨 지난 3분기 성장률은 인위적인 부양책이 없었다면 5% 초반대로 떨어졌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美·中 간 무역 마찰과 '대한민국 위기론'

오히려 미·중 무역마찰 타결 등과 같은 획기적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제3의 톈안먼 사태’나 ‘시진핑 축출’ 같은 상황이 팻 테일 리스크(fat tail risk: 가능성이 높은 꼬리 위험)로 우려돼 왔다. 지방경제 침체로 지방은행 파산이 잇달아 발생하는 과정에서 국경 지역을 시작으로 높아지는 인민의 경제 고통이 전 지역으로 확산하는 추세였다. 1단계 합의안에서 농산물 구매, 위안화 절상 등 트럼프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 관련 민원을 대폭 수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과의 1단계 합의안이 절실했다. 지난 7월 플로리다 출정식 이후 조 바이든, 버니 샌더스 등 유력 민주당 후보와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우리 속담처럼 취임 이후 지난 3년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미국 국민의 표심을 얻을 만한 확실한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4차 탄핵설이 공식화된 지난달 이후에는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유일한 버팀목인 경기와 증시도 중국과의 무역마찰 타결 이상으로 확실하게 끌어올릴 방안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책임을 맡고 있는 재정정책은 대선 정국에 들어간 상황에서는 증세를 통한 재원 조달이 불가능하다. 적자 국채를 통한 재원 조달은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 국채 발행→국채 금리 상승→민간 수요 감소)로 경기부양 효과가 작다.

미국 중앙은행(Fed)과 제롬 파월 의장도 비협조적이다. 내년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올해 마지막 Fed 회의에서 현 금리 수준인 연 1.5∼1.75%를 오랫동안 유지할 방침을 밝혔다. 대선이 치러질 내년 11월까지 한 차례 금리 인하도 힘들 것이라는 시각마저 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처럼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뜨려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는 너무 다르다.

‘스트롱 맨’ ‘정치꾼’ ‘전파탐지기형 인간’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은 1단계 합의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보다 민감한 사안을 담는 단계별 합의를 추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한 것은 ‘경제패권 다툼’인 미·중 간 무역마찰은 영원한 타결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올해 말 위기가 발생한다’ ‘곧 망한다’ ‘시간이 없다’…. 미·중 무역마찰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유명 유튜버와 미래 예측론자들이 내놓은 한국 경제 위기론(혹은 망국론)의 제목들이다. 위기 발생을 전제로 현금을 충분히 확보하고 금과 달러를 사두라는 대처법까지 제시했다. 한 외국인에게 “한국은 모든 위기론의 집합체 같다”며 “실제로 국가가 망하면 한국 국민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히고 머리가 멍해졌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각종 위기론에도 한국 증시와 외환시장은 잘 버티고 있다. 위기론자가 폭락할 것으로 봤던 코스피지수는 1년 전보다 높고, 달러당 1250원 이상으로 급등할 것이라던 원·달러 환율은 1170원대로 하락하고 있다. 위기론자가 사두라고 했던 금과 달러의 수익률도 팔아치우라고 한 주식(코스피지수 기준)보다 높지 못하다.

‘내가 태어나 자라고 묻혀야 할 조국(祖國)은 어떤 경우든 망해서는 안 된다.’ 위기론을 넘어 망국론까지 제시했던 유명 유튜버와 미래 예측론자에게 반대로 하고 싶은 말이다. 특정인 때문에 마음 놓고 부를 수 없었던 ‘조국’이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말이 위기론자와 망국론자 때문에 또다시 가슴을 아프게 한다.

현 정부가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망국론’까지 나올 만큼 국정운영을 잘못한 책임은 크다. 위기론자와 망국론자를 ‘가짜 세력’으로 내몰아서도 안 된다. 모두가 후손 세대에 더 살기 좋은 ‘조국’을 물려주기 위해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공공선)’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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