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산업은 비메모리 미래차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3대 중점 육성산업’이다. 정부는 6개 부처로 바이오산업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이달 중순께 육성 전략을 확정하고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규제 때문에 외국으로 나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내 1세대 바이오벤처 마크로젠이 대표적이다. 서정선 회장은 한경과의 인터뷰에서 “규제 개혁이 앞으로도 지지부진하면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크로젠은 올초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아직 사업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고혈압 등 13개 질환 발병 가능성을 유전자 검사로 알아보는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승인이 나지 않아서다. 생명윤리 문제 등을 지적하는 의사와 시민단체 등의 반대 때문이다.

TF가 발표할 육성 전략도 알맹이가 빠져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아·난자 관련 연구 규제를 풀지 않기로 한 데다 의료·건강데이터는 통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해서다. 역시 의사·약사 단체 등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정부가 ‘혁신성장’을 내세우며 규제 개혁에 나서고 있지만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히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바이오산업 사례에서 보듯이 각종 이해집단의 반대에 맞닥뜨려 이들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정부와 여당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면서 규제 개혁이 겉돌고 있는 것이다.

연금개혁에 대한 조직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를 밀어붙이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뚝심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는 퇴직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총파업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마크롱 정부는 예정대로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지금 개혁에 실패하면 2025년까지 연기금 적자가 국내총생산의 0.7%로 불어나는 등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파업 지지 여론이 70%에 육박하고 여론의 마크롱 지지율은 30% 초반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개혁이라는 신념 아래 정면돌파에 나선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주 52시간제 보완대책 역시 노동계의 거센 반대에 직면해 있다. 노동계는 중소기업에 시행을 최장 1년6개월 유예한 것과 특별연장근로 사유를 재해 재난 이외에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 증가’ 등으로 확대한 것은 근로시간 단축을 무력화시키는 조치라며 장관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노동계는 현 정부의 주요 지지층이다. 정부는 그간 지나치게 이들의 눈치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수출과 내수 동시 부진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기업들에 획일적 주 52시간 규제까지 강요하는 것은 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다.

정부는 이익집단이나 지지층의 격렬한 반대가 있을 때마다 번번이 물러서기만 해왔다. 소비자 편익을 외면한 ‘타다 금지법’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들에 대한 ‘불편한 설득’을 계속 외면한다면 ‘혁신성장’은 그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