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개인정보 족쇄' 풀어 빅데이터 길 넓혀야
중국에는 알리바바의 마이뱅크, 텐센트의 위뱅크, 바이두의 바이신뱅크, 샤오미의 시왕뱅크 등 네 개의 인터넷전문은행이 성업 중이다. 이들은 제도권 은행의 중금리대출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금융권 접근이 아예 불가능했던 약 2억 명의 중소 영세기업과 농어민에게 중금리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정부 70년 동안 하지 못했던 이른바 ‘포용금융’을 저신용층에 제공하는 금융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중국 인터넷전문은행이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금융소비자 신용분석에 빅데이터를 사용하면서다. 이들 인터넷전문은행은 중소 영세기업과 농어민이 모바일로 대출을 신청하면 1인당 약 10만 개의 공공·민간 빅데이터를 이용, 인공지능(AI)으로 신용을 심사해 대출 가능 여부는 물론 금리 수준까지 결정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대개 1인당 8만~10만여 개의 공공·민간 빅데이터를 AI 심사분석에 이용한다.

그러나 과도한 개인정보 보호 탓에 개인정보를 불과 40~50여 개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한국에서는 이런 신용분석을 할 수 없어 중국 같은 포용금융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 60여만 명이 중금리대출 이용이 어려워 연리 100%가 넘는 불법 사채를 6조~7조원이나 쓰면서 신음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중국이나 다른 선진국처럼 빅데이터를 AI 대출 심사분석에 활용할 수 있다면 사회초년생, 학생, 주부 등 금융거래가 거의 없는 소위 ‘신(thin)파일러’ 1300여만 명에 대해서도 신용평가의 길이 열리게 된다. 또 신용등급이 낮아 연 20%가 넘는 2금융권 고금리대출을 사용하고 있는 중·저신용등급 1200여만 명에게 연 10% 안팎의 중금리대출이 가능해져 금리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전망이다. 금융뿐 아니다. 방대한 의료 빅데이터를 공유하면 의료진단, 원격진료 등 의료산업도 획기적인 발전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보호법 등 ‘데이터 3법’이 개인정보 보호에만 치중한 나머지 모든 개인정보 이용 시 정보 소유자의 사전동의를 받도록 엄격하게 규제해 빅데이터를 이용한 산업의 발전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왔다. 이런 과도한 규제를 개혁하기 위한 데이터 3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주요 내용은 개인 식별이 어려운 ‘가명정보’를 도입해 ‘통계 작성, 공익적 기록보존, 과학적 연구’에는 정보 소유자의 사전동의 없이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3개 부처에서 관장하는 개인정보 보호 체계를 국무총리실 산하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설립해 관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가명정보 사용 허용 등은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가명정보 활용 범위에 ‘산업적 연구’를 포함하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앞으로 빅데이터가 얼마나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지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산업 발전이 목적인 만큼 가명정보는 재식별을 엄격히 규제하면서도 산업적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논의해나가야 할 것이다. 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이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국가 공공기관 등이 보유한 4대 보험료 내역 등 공공 데이터를 소유자 동의 없이 사용하도록 한 원안이 삭제된 것도 장기적으로 협의해야 할 사안이다.

빅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의 쌀’이다. 현재 5%도 개방돼 있지 않은 공공 데이터를 국가안보상 중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네거티브 방식을 적용해 미국, 유럽처럼 90% 수준까지 개방해야 한다. 신산업 분야 19개 가운데 63%에 달하는 12개 분야가 데이터 3법에 막혀 있다는 대한상공회의소의 ‘규제트리’ 분석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규제감독 권한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로 새로이 출범할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옥상옥 기구로 변질돼 개인정보 보호에만 치중하거나 국민의 모든 정보를 장악해 소위 ‘빅브러더’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보 보호 전문가와 정보 활용 산업대표가 위원으로 균형있게 참여하는 완전한 탈정치적 전문가 독립기구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