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디지털 분신(分身) 시대의 경제적 자유
‘아마존’에서 책을 사면 구매자가 흥미를 느낄 책들이 추천된다. 인공지능(AI)이 구매자의 판단을 조금은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책을 살 때마다 인공지능의 예측 능력은 향상된다. 그 구매자가 아마존에서 다른 물품이나 서비스를 사면 그에 관한 인공지능의 예측 능력은 훌쩍 커진다. 이런 예측 분석(predictive analytics)은 어지간한 기업에선 고객관계관리(CRM)에 일상적으로 쓰인다.

예측 분석의 목표는 특정인에 대한 전인적(全人的·holistic)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 관한 모든 정보가 집적돼 모형이 점점 정교해진다. 마침내 그의 판단에 대한 예측에서 모형이 본인보다 정확해진다.

우리는 자신을 잘 안다고 확신하지만, 실은 그리 잘 알지 못한다. 우리를 근본적으로 움직이는 심리적 힘은 본능, 욕망, 조건반사, 무의식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인데,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하고 나서 뒤늦게 합리화하는 일이 많은 것은 이런 사정에서 나온다. 그래서 예측 분석을 위해 생성된 모형이 본인보다 그의 판단을 더 잘 예측하게 된다.

이런 모형들은 일단 시장을 더욱 효율적으로 바꾼다. 소비자의 잠재적 수요를 더 또렷이 파악해 정보비용을 줄인다. 소비자의 판단을 예측함으로써 시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든다. 아울러 불량 소비자의 사기를 감소시켜 거래 비용을 줄인다.

반면 이 새로운 기법은 문제도 야기한다. 개인적 수준에선 사생활(privacy)에 대한 위협이 커진다. 자신의 특질을 충실하게 띤 디지털 분신(digital doppelganger)이 존재하고, 그 가운데 어느 것은 자신의 판단을 자신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섬뜩하게 다가올 터다. 그런 정보들은 익명화를 거치지만 그것의 원천이 누구라는 것을 아예 감추는 건 아니다.

사회적 수준에서도 이 일은 심각한 함의를 품었다. 꼭 100년 전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시장에서 유통되는 정보들을 정부가 대신 처리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회주의 명령경제에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다. 이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사회에 존재하는 정보는 거의 다 개인이 지녔으며 그것들을 한데 모을 길은 없다고 지적했다. 자연히 명령경제는 아주 적은 정보만을 처리하게 돼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이제 대기업들이 개인의 디지털 분신을 만들어 끊임없이 예측 분석하므로 정보 수집에 관한 하이에크의 주장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그렇게 대기업에 모인 정보는 모두 디지털 정보이므로, 정부가 그것들을 한데 모으기는 어렵지 않다. 양자 컴퓨터의 발전으로 정보처리능력이 도약하면, 이론적으로는 예측능력에서 정부가 시장을 뛰어넘을 수 있다. 정보 처리에 관한 미제스의 주장도 약화되는 것이다.

물론 이내 반론이 나온다. 개인들의 디지털 분신을 한데 모으더라도 시장에서 나오는 창발적 현상들을 재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근년에 빠르게 발전한 주체기반 모형(agent-based model)은 이런 약점을 상당히 메워줄 수 있다. 자율적 주체 사이의 상호작용을 살피는 이 기법은 생물과학과 사회과학에 적용돼 많은 통찰을 낳았다. 1980년대 로버트 액설로드의 ‘죄수의 양난(prisoner’s dilemma)’을 이용한 실험과 1990년대 조슈아 엡스타인과 로버트 액스텔의 ‘슈거스케이프(sugarscape)’는 사회의 성립과 진화에 관한 근본적 통찰들을 낳았다.

지금 풍요로운 사회에서 시장경제는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위기를 맞았다. 사회주의 조류는 빠르게 거세지고 시장을 향한 정부의 통제와 침투는 점점 커진다. 시장경제 덕분에 발전한 인공지능이 이제는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기술이 된 반어적 상황을 맞아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경제적 자유를 지킬 방도에 관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