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전망] 힘 빠진 외교로는 必敗한다
한·미 국방당국은 연합공중훈련을 연기하며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다 낭패를 당했다. 그런 당국의 모습을 보는 국민의 걱정이 크다. 양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태국 방콕에서 회담을 열고 “외교적 노력과 평화를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선의의 조치”라며 북한도 훈련과 연습에서 성의를 보여줄 것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연평도 포격 9주기를 맞아 ‘9·19 군사합의’를 보란듯이 위반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도 적대 정책을 철회해야 비핵화 협상이 가능하다며 한·미 훈련 자체를 완전히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반응이 실망스럽지만 적극적인 노력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북한에 군사 합의 준수를 촉구했고 앞으로 합의 위반을 하지 말도록 항의했다”고 밝혔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미 양국은 군사훈련을 중단하거나 축소해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협상을 촉진한다는 논리를 공유해왔다. 3대 연합훈련(키리졸브, 독수리, 을지프리덤가이드)은 이름이 바뀌고 규모가 축소됐다. 매년 실시하는 연합공중훈련(맥스선더, 비질런트 에이스)도 축소 또는 연기됐다. 이런 조치는 큰 틀에서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 줘야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국내 일각의 대북 체제 보장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연합훈련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비판적인 시각이 영향을 미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군사훈련의 축소와 중단은 방위력 약화로 직결된다. 연합방위체제에서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외교를 뒷받침한다는 명분으로 연합방위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역사적으로 성공한 전례를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강력한 힘으로 외교를 뒷받침한다는 미국의 오랜 전통과도 크게 어긋난다.

일찍이 프로이센의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2세는 “무력 없는 외교는 악기 없는 음악과 같다”고 설파했다. 냉전 초기 미국의 대(對)소련 봉쇄전략을 입안한 조지 케넌은 “군사력이 외교를 매끄럽고 유쾌하게 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는 명언을 남겼다. 역대 미국 정부는 강력한 힘이 없이는 외교가 성공할 수 없다는 케넌의 명언을 외교정책의 나침반으로 삼아왔다.

헨리 키신저는 “힘은 협상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수단”이라며 평화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소위 평화만능주의가 소련의 도발을 초래할 뿐이라고 경계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조지 슐츠 국무장관은 “힘의 뒷받침 없는 외교는 비효과적이며, 협상에서는 힘이라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87년 체결된 중거리핵미사일폐기조약(INF 조약)은 힘에 기초한 외교가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소련이 중거리핵미사일을 동유럽에 배치하자, 미국은 서유럽에 같은 미사일을 배치해 힘의 균형을 맞춘 후 상호 핵군축을 통해 해당 미사일을 모두 폐기했다.

트럼프 행정부도 힘이 뒷받침하는 외교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백악관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는 막강한 힘이 미국의 외교를 강하게 만들고 국제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하도록 도와주며, 강력한 군사력은 외교관이 힘의 우위에서 협상하도록 보장한다고 명시했다.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겠다는 명분으로 연합훈련을 줄이는 것은 “힘이 뒷받침하는 외교라야 성공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시한 정책이다. 북한의 선의를 기대하는 정책이라면 더욱 잘못됐다. 한반도에서 북한이 핵을 독점한 것은 30년 전에 북한의 선의를 믿고 우리가 먼저 핵무장을 포기한 비핵화 외교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는 우리 사회의 평화만능주의가 북한에 의해 철저하게 역이용당한 생생한 증거다. 한국은 9·19 군사합의로 묶여 있는 훈련과 정찰을 즉각 재개해야 하며, 한·미 양국은 그동안 줄줄이 축소된 연합훈련을 복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