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한국의 민주주의, 이상 없나?
이제는 ‘현대의 고전’이 된 <제3의 물결>에서 새뮤얼 헌팅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확산된 시기가 세 차례 있었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두 번째는 2차대전 종전 직후였다. 세 번째 시기는 1974년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으로 시작됐다. 헌팅턴 교수는 제3의 민주화 물결도 앞의 두 물결처럼 ‘썰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의 그런 우려가 근래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증가일로였던 민주국가 숫자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 퇴행’ 사례를 든다면 헝가리와 폴란드를 빼놓을 수 없다. 헝가리 하면 1956년의 반공혁명이 떠오를 만큼, 공산독재에 대한 저항이 컸던 나라다. 헝가리는 당연히 동구권의 공산독재가 해체되는 과정에서도 가장 먼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수용했다. 폴란드도 헝가리에 못지않다. 레흐 바웬사가 이끈 자유노조운동이 동구권 민주화 운동의 물꼬를 텄고, 이후 헝가리와 함께 동유럽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왔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동유럽의 진주’로 불렸던 이 두 나라의 민주주의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퇴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 권력에 대한 제도적인 견제와 균형이 제거됐다. 특히 사법부와 검찰 그리고 헌법재판소를 무력화해 정권의 시녀로 만들었다. 사법개혁의 미명 아래 기존 판사들을 대거 퇴출하고 그 자리는 친여 판사들로 채웠다. 철저하게 탈정치화했던 검찰은 완전히 독립성을 상실했다. 법률의 위헌성을 감시하는 헌법재판소도 친여 재판관들로 채워졌다. 언론 ‘개혁’을 통해 언론도 정부의 선전기관으로 만들었다. 정권에 대한 도전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야당에 불리한 선거제도를 도입했다. 시민단체도 ‘지원’이란 명목하에 정부 통제 아래 놓였다. 다른 한편, 종족적 민족주의를 부추겨 내부 결속을 다졌다.

재미있는 것은 민주주의 퇴행을 주도하는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나 폴란드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는 둘 다 한때 민주투사였다는 점이다. 1963년생인 오르반은 1988년 피데스(청년민주동맹)를 창립했다. 이듬해에는 헝가리 혁명(1956년)에서 희생된 임레 나기 등 순교자들의 이장을 위해 부다페스트 영웅광장에서 열린 행사장에서 자유선거와 소련 군대 철수를 요구하는 연설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1949년생인 카친스키는 학창 시절에는 자유노조의 전신인 노동자보호위원회에서, 그리고 1980년대에는 바웬사가 이끈 자유노조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오르반과 카친스키를 보면 헌팅턴 교수가 생전에 자주 “민주투사가 언제나 민주주의자는 아니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두 사람 모두 한때는 자유민주주의자로 보였지만, 지금은 ‘인민의 의지’를 빙자해 민주주의를 빈껍데기로 만들고 대외관계에 민족 감정을 동원하는 포퓰리스트 독재자가 됐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고립된 사례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헌정 절차를 통해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쿠데타 같은 극적인 사건을 통해 일어나던 과거의 권위주의적 퇴행과는 사뭇 다르다. 21세기판 민주주의 퇴행의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의 탈을 쓰고 서서히 진행된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를 도둑고양이처럼 슬그머니 나타나는 ‘도둑 권위주의(stealth authoritarianism)’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변화 하나하나의 의미를 놓치기 마련이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을 때는 이미 되돌리기 너무 늦은 상태가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난 2~3년 사이에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도 새삼 경각심을 갖고 ‘압축’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촛불민심을 내세운 적폐청산, 친여 코드의 판사들이 장악한 사법부, 개혁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검찰 독립성의 훼손, 친여 인사들이 장악한 언론, 반일(反日) 감정의 동원 등을 한데 모아놓고 보면 만일의 가능성을 우려하기에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