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논리 대 신뢰 중시', '情 대 和' 대립
경제적 해법 알면서도 정서상 맞서서야

국중호 < 日 요코하마시립대·경제학 교수 >
[세계의 창] 꼬이는 한·일 관계, 드러나는 가치관 충돌

삐걱거리는 한·일 관계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오는 23일 0시로 실효되는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를 문재인 정부가 철회할 것인가 여부다. 파기든 철회든, 어느 쪽이 득(得)이고 실(失)인지에 대한 왈가왈부는 필자의 영역을 벗어난다. 어쨌든 지소미아 파기 여부는 한·일 관계를 가늠하는 중요한 고비다.

한·일 관계 악화의 근저에는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가치관 대립이 있다. 한국과 일본 간에는 ‘민주 논리 대(對) 신뢰 중시’, ‘정(情) 대 화(和)’, ‘개별 효율 대 집단 효율’이 맞서고 있다.

우선 ‘민주 논리 대 신뢰 중시’의 대립이다. 한·일 관계가 크게 꼬인 계기는 작년 10월 말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다. 강제 징용에 대한 개인의 배상권 청구는 살아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지만,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모두 마무리됐다며 대항했다. 한국은 ‘개인 존중 민주논리’를 내세웠으나 일본은 ‘국가 약속 신뢰 중시’를 들고 나왔다. 양국 정권의 중추 지지 기반도 부대낀다. 한국은 민주화 투쟁을 했다는 소위 운동권 출신이 포진한 반면, 일본은 ‘일본회의’ 같은 우익단체가 진을 치고 있다. 한쪽은 왼쪽이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오른쪽 노선을 잡고 있어 합의점 찾기가 요원하다.

다음으로 ‘정(情) 대 화(和)’라는 정서적 차이다. 한국은 ‘정’을 내세운 초코파이, 조용필의 ‘정(情)’이라는 노래가 히트하는 나라다. 한국인에게는 정이란 말을 들으면 뭔가 따스하고 깊숙이 다가오는 뭉클함이 있다. 그 이면에는 ‘우리’와 ‘남’으로 규정해 우리끼리는 뭉치고 남은 배제하는 편 가르기가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옛 일본국 이름이 야마토(大和)이고 새 연호가 레이와(令和)일 정도로 화합을 중시한다. 여기에는 사방이 바다로 막혀 있는 섬나라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 관계도 작용한다. 일본이 ‘모두 함께’를 구호로 ‘화(和)’를 앞세운다 하더라도 그들 간의 화합이다. 정(情)과 화(和)의 차이가 양국 대립의 정서적 배경이다.

마지막으로 ‘개별 효율 대 집단 효율’의 태도 차이다. 한국에서는 효율을 강조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개별 효율이 높다고 해서 집단 효율이 항상 높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조직의 장(長)이 바뀌면 많은 것이 바뀌며 때론 쉽게 판을 부수기도 한다. 바꾸는 것이나 바뀌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깊이 생각지 않고 바꿈으로 인해 초래되는 시행착오 비용이 크다는 데 있다. 끼리끼리 개별적으로는 뭉쳐 있을지 모르나 편 가르기로 판이 깨질까 두려운 대한민국, 개별 효율은 낮아 보이나 공공 규칙을 잘 따르는 일본, 어느 쪽이 효율적인가? ‘국익’ 앞에서는 판을 깨지 않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지소미아가 파기되면 양국 국민의 안전 확보에 위협이 되고, 한·미·일 3국 연계에도 타격을 주게 되므로 파기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 정부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모르지만 한·일 관계 악화는 경제적으로 많은 부분을 잃게 한다.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만큼 하나씩 소중히 해 나아가야 할 텐데, 차 떼고 포 뗀 채 잘해 가기는 어려운 일이다.

신뢰 중시·화(和)·집단 효율에 익숙한 일본인지라 협업을 요구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서 강점을 발휘한다. 일본의 소부장을 활용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국제 분업이 한국이 취해야 할 현명한 전략이다. 경제적 해법을 알면서도 정서상 또 분위기상 그저 맞서 있는 두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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