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은 주요한 것일수록 논쟁적이기 쉽다. 요즘처럼 좌우·보혁 진영 논리가 첨예할 때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때문에 정책으로 수립, 실행될 때는 최소한 나름대로는 국가발전을 위한 ‘최적·최선의 선택’일 것이라는 선의의 믿음부터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잡음 안 나게’ 차원의 행정이나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정치는 나라 발전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파생결합증권(DLS) 사고가 났다고 사모펀드 다 죽일 작정인가”라며 정부의 판매규제를 맹비판한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타(한경 11월 16일자 A1, 3면)는 이런 해묵은 관료주의에 경종을 울릴 만하다. 고위험 파생상품의 판매·운용에서 문제가 생겼으면 불완전판매 여부를 먼저 확인하고, 가입자들의 리스크 인지력과 자기책임도 조사하면서, 감독당국의 역할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게 순리일 것이다. 아직도 초보단계인 자본시장의 발전을 가로막지 않으면서 저금리 시대 자금이 더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도록 돈 흐름을 잘 유도하는 것도 감독당국의 중요 책무다. 그런데 덜컥 판매금지로 ‘투자 기회’와 ‘자본조달 기회’를 함께 제한하고 말았다. 고도로 정교해야 할 금융 행정을 참으로 쉽게 하려 든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다시 관심사가 된 대학입시도 마찬가지다. ‘조국 사태’ 때 ‘정시냐, 수시냐’라는 논란이 일더니 곧바로 ‘정시확대’로 정해져버렸다. 대통령 한마디에 교육정책 핵심 내용이 급히 바뀐 과정도 문제지만, “논란이 없게끔 정시 확대로 가야 한다”는 논리가 더 문제다. 우리 행정의 보신주의를 그대로 보여준다. ‘오지선다’로 나타난 숫자(점수)만 보고 선발하게 하면 이의도 없고 뒷말도 적을 것이라는, 딱 그 수준 아닌가. ‘자사고 일괄 폐지’도 고교 간 학력차이 논란 자체를 구시대적 획일화로 덮겠다는 것이니 같은 맥락이다.

‘잡음 방지’나 바라는 소극 행정은 널려 있다. 국가 장기 성장발전 계획의 축이 될 국민연금 개편안 마련을 두고 보여준 정부 태도도 그렇다. 연금 고갈을 막기 위한 개편이라면 ‘더 내거나, 덜 받거나, 수익률을 확 올리거나’ 외에 선택지는 없다. 그런데도 어느 방안에도 자신은 없고, 정부 귀에는 ‘잡음’으로나 들릴 비판만 따를 듯하자 법적 권한도 없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넘긴 채 지금껏 23개월째 헛바퀴만 돌렸다. 급조된 산업안전보건법이나 ‘화학물질 등록·평가법’ 등에도 그런 요소가 다분하다. ‘잡음 안 나게’ 지상주의가 나라 곳곳을 망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게 됐다.

진정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정부라면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최근 국내에서 인력난에 봉착했다는 ‘인공지능(AI) 인재확보 대란’에서도 드러났듯이, 혁신성장을 꾀하겠다면 더욱 그렇다. 기껏 ‘잡음 예방’에나 신경쓰고, 크고 작은 선거에나 연연하다가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정권으로 남게 될 것이다.

복지부동이나 잡음방지 행정이 어제오늘 폐단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반복되고 심지어 심해져서는 곤란하다. 장기 저성장의 골짜기를 조금이라도 일찍 벗어나려면 ‘책임 정치’하에 ‘적극 행정’을 펴야 한다. 그 결과로 선거에서 심판을 받겠다는 각오여야 정치와 행정이 발전하고, 나라도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