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브렉시트 총선이 낳은 영국 포퓰리즘
“경제 포퓰리즘이 좌지우지하는 총선”(인디펜던트) “부채 증가 관심없는 정치권”(가디언) “총선 승리 위해 재정준칙 폐기한 정부”(파이낸셜타임스).

다음달 12일 치러지는 영국 조기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내놓은 공약에 대해 현지 언론들이 잇달아 내놓은 평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내년 1월 말까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단행하기 위해 조기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총선을 한 달가량 앞둔 지금 정작 브렉시트는 선거 이슈에서 다소 비켜나 있는 상황이다. 집권여당인 보수당과 제1 야당인 노동당이 하루가 멀다 하고 경제공약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막대한 정부 재정지출이 수반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보수당은 인프라 및 복지서비스 확대를 위해 연간 공공지출 규모를 220억파운드(약 30조원)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질세라 노동당은 연 500억파운드(약 75조원) 재정확대를 내걸었다. 공공과 민간 합동으로 조성하겠다는 각종 기금 공약까지 합치면 재정투입 규모는 수천억파운드에 달할 정도다.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면 세수가 증가하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재정적자가 발생한다. 결국 보수당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켜왔던 재정준칙인 ‘2%룰’을 폐기하기로 했다. 영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내로 관리해왔다. 유럽연합(EU, GDP 대비 3%)보다 엄격한 기준이다. 1970년대 복지 확대로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구제금융까지 받아야 했던 트라우마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총선 승리를 위해 기존 재정준칙을 폐기하고 3% 이내로 재정수지를 관리하도록 방침을 바꾼 것이다. 노동당은 한술 더 떠 재정준칙을 아예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싱크탱크인 레졸루션파운데이션은 “브렉시트를 앞둔 상황에서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막대한 차입을 통해 재정적자가 급증한 1970년대 상황으로 돌아갈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이런 모습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3%룰’ 재정준칙을 사실상 폐기한 한국을 연상케 한다. 경기 부양을 위해선 정부가 앞장서 돈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재정 상황에 따라 관리재정수지를 조정해야 한다는 얘기도 틀린 건 아니다.

다만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세수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곳간’을 털겠다는 건 또 다른 얘기다. 더욱이 선거를 앞두고 나온 재정확대 정책이 국민경제 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쓰일지도 의문이다. ‘재정을 곳간에 쌓아두기만 하면 썩어버린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