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여성 장군 시대

“국민으로서 여자만이 안일하게 국난을 방관하는 태도로 있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으므로 (중략) 남녀를 막론하고 국가 총력으로 최후의 평화를 획득할 때까지 싸워야 할 것이다.” 6·25전쟁이 터진 1950년, 여군 창설 주역인 고(故) 김현숙 대령(1915~1981)이 발표한 여자 의용군 모집 담화문이다.

한국 여군은 그해 9월 6일 탄생한 여자의용군교육대와 함께 출범했다. 당시 미혼 여성 500명이 6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대했다. 1997년부터는 공군사관학교를 시작으로 육·해군사관학교에 여학생이 입학했다. 2002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장군 양승숙 준장(간호병과)이 ‘별’을 달았다. 2010년 송명순 준장은 전투병과 첫 여성 장군이 됐다.

그제는 창군 이래 최초로 여성 ‘투 스타(소장)’가 나왔다. 헬기 조종사 출신으로, 항공단장을 지낸 강선영 육군 소장이 항공작전사령관에 임명됐다. 미혼인 강 소장은 “헬기와 결혼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베테랑이다. 이번에 진급한 김주희 육군 준장은 큰오빠인 김기철 준장과 함께 ‘남매 장군’이 됐다.

세계 최초의 여군 장성은 1970년 미국 육군 간호병과 준장이 된 애나 메이 헤이스다. 2008년에는 앤 던우디 육군 대장이 여군 최초의 4성 장군이 됐다. 던우디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과 6·25,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조부·증조부·남편·여동생·조카딸까지 5대가 군인 집안이어서 화제를 모았다. 2014년에는 공군과 해군에서도 대장이 나왔다. 현재 미군 130만 명 중 16%가 여성이고, 여성 장군은 69명에 달한다.

한국의 여성 장군은 18명이다. 국방부는 올해 5.5%인 여군 간부 비율을 2022년까지 8.8%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현대전 양상이 개인의 체력보다 최첨단 전략무기 중심으로 바뀌는 중이어서 여군의 활동 영역은 더 넓어질 전망이다. 6·25 때도 전장에서만 여성의 힘이 빛난 건 아니었다. 아들 셋이 전사한 아픔을 딛고 수만 평의 임야를 개간해 제대군인 정착촌으로 제공한 조보배 여사 등 ‘숨은 영웅’이 많다.

이들을 기리는 국립현충원 비석에 노산 이은상은 이렇게 썼다. “내 나라 구하려고 피를 뿌리신 젊은이들/ 역사의 책장 위에 꽃수를 놓으셨네./ 조국의 포근한 흙속에 웃으며 잠드옵소서.” 지금 이 시간에도 ‘꽃수’보다 붉은 열정으로 우리 곁을 지키는 여군이 1만여 명에 이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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