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에 미처 다 쓰지 못한 예산을 연내 집행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총 95조원의 미집행 예산을 두 달 안에 소진하라는 주문이다. 지자체의 연말 ‘예산 몰아쓰기’ 행태가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될 전망이다.

지난 10월 말 기준 지방과 중앙의 재정 집행률은 각각 70%와 85%였다. 연말까지 90%와 97%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게 정부·여당의 목표다. 지자체에 불용(不用)예산 집행을 독려한 것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경제성장률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성장률 2%’ 마지노선이 무너지면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의 돈을 풀어 표심을 사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불용예산을 쓰라는 주문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지자체들의 예산이 제때 집행되지 못한 데는 여러 사정이 있다. 토지보상·입찰계약 등 복잡한 과정으로 인해 충분한 집행기간이 필요한 사업이 많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엄포에 남은 예산을 처리하느라 불필요한 사업을 벌이는 등 졸속 집행으로 국고가 낭비될 우려가 있다. 곳곳에서 공사판을 벌이고,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엎는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경기를 살리기는커녕 선심성 퍼주기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중앙·지방재정을 합쳐 매년 70조원 가까운 이월·불용 예산이 발생한다. 예산안 수립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불필요한 예산을 ‘일단 따내고 보자’는 식으로 편성했다는 얘기다. 정부·여당은 “예산 불용만 줄여도 추가경정예산 이상의 효과가 가능하다”고 했다. 다 쓰지도 못할 ‘슈퍼예산’을 편성해 놓고는 불용예산 집행으로 추경 효과를 내겠다는 것은 무책임하다. 재정 확대에 앞서 지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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