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은 실전에 돌입했는데
노동개혁, 신시장 창출 놓치고
AI 전담국 만들어 계획만 양산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안현실 칼럼] 길 잃은 한국의 'AI 경제'

생태계 관점에서 38개국의 혁신 역량을 평가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자료가 눈길을 끈다. 한국 기업의 역량은 미국, 중국, 일본 다음으로 높지만 정부의 정책 효율성·다양성·역동성 등 이른바 ‘조정 역량’은 34위로 나타났다. 미국, 독일, 프랑스, 중국, 일본, 인도는 말할 것도 없고 체코, 러시아, 폴란드에도 밀리는 수준이다. 정책이 혁신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부담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안으로 완전히 새로운 인공지능(AI)에 대한 기본 구상을 바탕으로 ‘AI 국가전략’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AI 연구개발(R&D) 전략’과 올해 초 ‘데이터·AI 경제 활성화 계획(2019~2023)’에 이어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전담국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조직 신설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정부가 설치한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아무 일도 못 하고 형해화된 마당에 국민이 동의할지 의문이다.

한국이 이러는 사이 선진국들은 AI 경제의 과실을 놓고 경쟁이 한창이다. 글로벌 시장 전문기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AI가 2030년까지 세계 총생산(GDP)을 14%(약 15조7000억달러)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각국에 돌아갈 몫이 똑같을 리 없다. 생산성 향상 효과 9조1000억달러는 노동시장이 AI 경제에 맞게 이행하고 있는지에 따라, 새로운 소비 창출 효과 6조6000억달러는 데이터와 AI 상품·서비스 간 ‘선순환’이 형성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경제학자들이 ‘생산성 역설’을 말하지만, AI 투자의 최종 효과가 혁신의 확산율에 달려 있다는 것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거꾸로 가고 있고, 데이터 규제와 AI 신시장 진입장벽 철폐도 언제 될지 기약이 없다.

AI 확산을 이끄는 산업을 보더라도 국가 간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맥킨지는 마케팅과 판매, 공급망 관리, 물류, 제조에 주목했고,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수송, 물류, 자동차를 지목했다. PwC는 서비스업이 가장 많은 이득을 볼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에서는 노동 문제, 규제, 진입장벽 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분야들이다. 특히 PwC의 예상이 맞다면 한국과 선진국의 서비스업 생산성 격차는 더욱 벌어질 공산이 크다.

국내 기업들은 하루가 초조할 것이다. 적시에 대응하지 못하면 선진국 AI 기업들이 독차지하는 ‘승자독식 구조’에서 헤어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맥킨지가 예상하는 대로 아주 큰 기업들과 아주 작은 기업들만 버티는 ‘바벨형(型) AI 경제’로 간다면 상당수 기업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정부가 기업이 바라는 조정 역량을 제때 보여주지 못하면서 신뢰가 땅으로 추락하고 있다. 정부에서 검찰로, 검찰에서 법원으로 넘어간 ‘타다’ 서비스 갈등은 그런 점에서 심각하다. AI 신시장이 피기도 전에 도미노처럼 무너질 위기인데도 제3자인 듯이 논평이나 늘어놓는 청와대, 국무총리, 장관들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런 정부가 AI 국가전략을 또 내놓은들 믿을 국민도 기업도 없다.

문 대통령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를 넘어서는 AI 정부가 되겠다”고 했다. 행정과 공공서비스에 AI를 활용한다고 AI 정부가 되는 게 아니다. AI 정부라면 미래를 예측하고 문제를 선제적으로 조정·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부처 간 칸막이, 낮은 생산성, 소극행정 등 관료제의 병폐 속에 AI 전담국을 만든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AI로 산업과 노동시장, 교육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차라리 과기정통부는 물론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을 모조리 통폐합하는 것은 어떨까?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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