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잃어버린 20년' 초래한 日정치 닮아가는 한국
2013년 초 ‘일본 장기불황에서 배운다’란 기획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실은 적이 있다. 도쿄특파원을 포함해 경제·산업부 기자 6명이 달라붙었다. 그해 말 이 시리즈로 ‘씨티 대한민국 언론인상’을 받았다. “장기불황에 빠져 있는 일본 산업 현장을 생생하게 보도하면서 전문가의 제안을 곁들인 입체적인 기사”란 평도 들었다.

그로부터 6년여가 지났다. 일본식 장기불황의 가능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재패니제이션(Japanization·일본화)>의 저자 윌리엄 퍼섹은 ‘잃어버린 10년’의 강력한 후보로 한국을 꼽았다. “이미 ‘J의 늪’에 빠졌다”(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경고도 있다.

사실 6년 전 시리즈를 할 때만 해도 장기불황 진입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그저 가능성을 짚어보고 반면교사로 삼자는 취지였다. 한국은 경제 성장 추이나 인구구조 등에서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 거품 붕괴 이후 만성적 저성장과 자산 디플레이션으로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한국에서도 저투자,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다. 최근 5년간 한국 경제 성장률은 연평균 3%로 떨어졌다. 올해는 1%대 성장에 그칠 것이 확실시된다. 소비자물가는 지난 8월 이후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웠다. 고령화와 사회 양극화라는 악재까지 더해지고 있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7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지 20여 년 뒤다. 노동력 감소 탓에 한국 잠재성장률은 2008년 3.9%(OECD 추산)에서 올해 2%대로 주저앉았다. 자동차, 철강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도 추락하고 있다.

여기까진 그때 예상대로다. 하지만 6년 전 ‘닮은꼴 한·일’을 전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었다. 바로 정치였다. 내각책임제 국가인 일본은 1990년 이후 아베 신조 총리 2차 집권(2012년) 전까지 15번이나 총리가 바뀌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를 빼면 평균 재임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했다. 잦은 의회 해산으로 과감한 정책 집행은커녕 일관성조차 기대하기 어려웠다. 정치 불안이 정책의 실패로 이어졌다. 한국은 5년 임기의 대통령제 국가다. ‘제왕적’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대통령 권한도 막강하다. 일본과는 다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엔 이마저도 따라가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와 시기를 함께하고 있는 20대 국회는 최악의 ‘식물국회’가 되고 있다. 지난 3년6개월간 법안처리율은 역대 최저인 28%에 그쳤다. 경제 활성화 관련 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 뒤 자진 사퇴까지 66일은 ‘혼돈의 시간’이었다. 국론은 두 동강 나고 경제정책은 뒷전으로 밀렸다. “경제는 버려진 자식이 됐다”(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경제가 이념에 발목 잡혔다”(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는 탄식이 나왔다.

오늘로 2874일. 아베 총리의 통산 재임 기간이다. 오는 20일에는 가쓰라 다로(2886일)전 총리를 제치고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에 오른다. 아베 총리 집권기간 일본 경제는 전후 최장인 77개월 연속 확장 국면을 연출했다. 아베노믹스가 성공했다고 단언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잃어버린 30년’이란 말은 없었다. 기업 세금을 깎아주고 ‘암반 규제’를 깨뜨린 결과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란 정책의 일관성도 유지됐다. 최근 정치를 보면 한·일이 뒤바뀐 듯하다. ‘잃어버린 20년’을 자초한 일본의 정치까지 닮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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