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갈 길 먼 원전 해체산업
‘대한민국 원전의 자존심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부산 기장군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고리 1호기의 차수문(쓰나미 등 유사시 바닷물 유입을 막기 위한 문)에 새겨진 문구다.

고리 1호기가 1978년 4월 29일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하면서 한국은 세계 21번째 원전 보유국이 됐다. 40년 뒤인 2017년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핵시대’를 선언했다. 고리 1호기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해체될 운명을 맞게 됐다.

지난 29일 찾아간 고리 1호기의 주제어실(MCR) 출력 계기판에는 ‘0’이란 숫자가 선명했다. 사용후핵연료 냉각장치 등 극소수 기능을 제외하고 스위치마다 ‘영구정지’란 네 글자가 인쇄된 푸른색 봉인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발전기를 돌려 전력을 생산하는 터빈도 2년 넘게 멈춰선 상태다. 벽을 맞댄 고리 2호기의 터빈 소리만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탈(脫)원전을 추진 중인 정부는 고리 1호기를 2032년까지 국내 기술로 해체한다는 목표다. 이를 토대로 해체 산업을 육성해 수출까지 하겠다는 포부다. 탈원전으로 원전건설업계가 고사 위기에 처하자 해체 산업을 키워 업계 숨통을 터주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고리 1호기가 원전의 자존심을 넘어 해체 산업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기술력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고리 1호기 해체에 필요한 기술 58개 중 현재 확보된 것은 45개”라며 “나머지 13개는 2021년까지 점진적으로 확보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 하반기로 예정했던 주민의견 수렴 절차는 아직 시작하지도 못했다. 해체 완료 시점이 2035년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원전 해체를 ‘미래 먹거리’로 삼기에는 시장 규모도 턱 없이 작다. 글로벌 해체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70조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반면 원전건설 시장은 30년간 500조~600조원에 달할 것이란 게 세계원자력협회(WNA)의 추산이다.

원전 전문인력의 사기 저하는 더 큰 문제다. 안전과 직결돼 있어서다. 입사 직후부터 40여 년간 고리 1호기에서 근무한 한 직원은 “고리 1호기는 전력 생산기지인 동시에 원전 엔지니어들의 사관학교였다”며 “정부가 탈원전 및 고리 1호기 해체를 선언한 뒤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고 했다.

정부가 탈원전 로드맵을 그대로 추진해도 향후 60년간은 전문인력이 원전 가동·관리를 책임져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 안전을 위협해선 안 된다”는 고리 1호기 직원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계속 귀를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