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살아 있는 전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living legend)’이다.” 그제 PGA투어 개인 통산 82승으로 최다승 타이 기록을 세운 타이거 우즈에게 동료 선수들이 한 말이다. 우즈는 PGA투어 메이저 4개 대회를 모두 휩쓴 그랜드슬램과 대회 5연승 3회 달성 등의 위업에 이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앞으로 그가 우승할 때마다 PGA 투어의 역사가 바뀌게 된다.

그의 영예는 잦은 부상과 긴 슬럼프를 이겨낸 결과여서 더욱 값지다. 그는 4년 동안 허리 부상에 시달렸고, 지난 8월에는 다섯 번째 왼쪽 무릎 수술을 받았다. 성추문에다 약물운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는 수난도 겪었다. 그런 고난을 견디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을 수 있는 실력을 입증했다.

스포츠 이외의 분야에서도 ‘살아 있는 전설’들이 많다. 세계에서 가장 큰돈을 사회에 내놓은 빌 게이츠는 이제껏 350억달러(약 41조7000억원)를 기부했다. 그는 “자녀에게 재산의 0.1% 미만만 물려주고 나머지는 빈곤퇴치 등을 위해 기증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했다. 전성기 때 악착같이 돈을 벌어 ‘실리콘밸리의 악마’라는 비난까지 받았던 그가 ‘기부계의 천사’로 거듭나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한국에는 1조원 이상의 장학기금을 조성한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있다. 2002년 사재 3000억원으로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세운 그는 1만여 명에게 2400억원의 장학금을 줬다. 2022년부터는 매년 5개 분야에 총 상금 75억원의 ‘한국판 노벨과학상’을 제정하기로 했다. 상금 규모가 노벨상(600만달러·70억원)보다 많아 주목받고 있다.

그도 한때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일제강점기에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이후 플라스틱 제조로 모은 재산의 97%를 사회에 내놓았다. 올해 97세인 그는 “노벨이 재산의 94%를 기부하고 기뻐했다는데 그에 비하면 내가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아름다운 역사’는 당대에 머물지 않고 미래세대로 이어질 것이다. 스포츠·빈곤퇴치·과학 영역을 넘어 문화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살아 있는 전설’들이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우즈도 지난 4월 마스터스 우승 뒤 “첫 우승 때는 아버지가 거기에 있었고, 오늘은 두 아이가 날 축복해 줬다”며 자신의 영광을 아이들에게 돌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