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고 계산하면 코스피지수가 1691에 불과하다는 진단(한경 10월 21일자 A22면)은 충격적이다. 21일 2064.84로 마감되는 등 코스피지수가 2000선 위에서 횡보하고 있지만 ‘반도체 착시’일 뿐이며, 상당수 기업의 주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밑돌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투톱’을 제외할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를 탈피한 2011년 이후 상장사 평균 주가는 17.5%나 떨어졌다는 게 신영증권의 분석이다.

‘반도체 착시’는 세계 1·2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압도적인 시가총액 1·2위를 달리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두 종목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통상 25%를 웃돌기 때문에 이들의 반등은 시장흐름을 왜곡시킬 때가 많다. 기업 실적 부진으로 올 들어 약세를 면치 못했던 코스피지수가 최근 두 달 동안 10% 넘게 급등한 것도 낙폭이 컸던 ‘반도체 투톱’이 반등한 때문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종목들의 주가는 대부분 하락하거나 횡보했다는 점에서 ‘반도체 착시’는 경계 대상이다.

반도체 착시가 잘못된 정책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상장사들의 배당액이 매년 사상 최대 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상장사 배당금이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19%씩 늘어나 지난해 31조9636억원에 달한 데는 ‘반도체 착시’로 정부와 투자자들의 압박이 커진 측면을 배제하기 힘들 것이다. 실적이 추락하고 있는 올 상반기에도 상장사 배당은 전년 동기보다 3.2% 늘며 신기록 경신을 예고 중이다.

증시를 넘어 경제 전반에 착시현상이 광범위하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고용지표가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청와대 일자리수석의 지난 주말 브리핑도 착시의 성격이 크다. 재정 투입에 따른 노인 일자리와 단기 일자리 증가를 외면하고 있어서다. 청와대 경제수석이 “경제 하강 원인은 반도체 경기와 세계 경기 둔화 때문”이라고 강변한 것도 마찬가지다. 올해 들어 선진국 경기가 꺾였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골디락스 경제’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글로벌 경기가 호황인 상황에서도 우리 경제가 빠르게 추락했다는 점에서 착각을 넘은 궤변으로 볼 수 있다.

이익 감소로 점점 골병 들어가고 있는 기업들의 상황은 착시를 허용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청와대 인사들이 보고 싶은 몇몇 지표만 부각시켜 “우리 경제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무책임한 언사를 계속해서는 곤란하다.

한국 경제가 시계제로의 위기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쏟아지고 있다. 제조업 4분기 경기실사지수(BSI)가 80대로 곤두박질쳤고, 수출은 이번 달까지 11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시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계산한 한국의 경기선행지수가 역대 최장인 27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고, 급기야 해외 투자은행(IB)들의 성장률 전망치가 평균 1.9%로 내려앉았다. 착시로 인한 경제 인식의 거품을 걷어내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대책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