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대한민국의 마지노선
주가와 환율, 금리와 관련해 ‘마지노선(Maginot Line)’이란 표현이 자주 쓰인다. 이 말이 원래 군사 개념이었던 것을 돌아보면 그럴싸할 때가 많다. 주식이든 외환이든 자본시장 최전선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언제, 어디서 또 뭐가 터질지 모르는 하락장에서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수시로 변하기도 한다. “바닥(마지노선)인가 했더니 지하실이 있고, 지하실이 진짜 마지노선인가 했더니 지하 2층도 있다”는 말이 그런 것이다. 비즈니스와 외교에서도 마지노선이 뒤따른다. 사업거래나 국가 간 협상도 총만 없을 뿐 실상 전쟁이나 다름없다.

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 육군장관 앙드레 마지노가 국경에 세운 강고한 요새방어선은 난공불락처럼 인식됐다. 스위스 국경에서 벨기에 국경까지 140㎞의 진지와 참호가 얼마나 거창하게 정비됐던지 지금까지도 ‘최후의 방어선’ ‘더 물러설 곳은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을 투입한 프랑스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때 마지노선은 쉽게 뚫렸다. 우회작전과 함께 항공기를 동원한 독일 전략이 먹힌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한국형 마지노선’이 적지 않다. 39%까지 내려간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에 대해서도 언론은 ‘마지노선 붕괴’라는 평가를 했다. 대선 때 득표율 41%보다 낮아졌다는 것에다, 40% 아래로 내려가면 국정 추진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던 과거 경험과 연결시키며 “마지노선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보다 중요한 ‘대한민국의 마지노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는 ‘연간 성장률 2%’라도 지켜야 한다. 국가 과제인 저출산은 우선 ‘합계출산율 1명’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끌어올려야 할 상황이다. 지난해 0.977명으로 떨어져 인구재앙은 이미 펼쳐지고 있다. 투자와 고용, 수출과 소비에서도 민관이 공유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정하고 함께 방어에 나설 필요가 있다. 북한 핵 해결에서도 ‘대화 시한’ 등으로 일종의 마지노선을 세우고 안 되면 ‘플랜B’로 가야 한다.

이런 마지노선은 국가적 목표요, 국가존립의 의지다. 우리 역량부족으로, 때로는 대외변수로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면 제2 방어선이라도 짜야 한다. “마지노선이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오는데도 지금 청와대처럼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것은 지지율이라는 특성을 감안한다 해도 무기력·무책임해 보인다. 사방에서 마지노선이 흔들리고 무너지면 그게 국가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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